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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언펠트를 향해 가는 길은 차창 밖으로 호수와 잔디밭, 아름다운 집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의
연속이었다. 마이언펠트는 생각외로 너무 작은 마을이었다. 기차역도 우리나라의 시골 간이역보다 작아 보였다.
하이디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마을 뒤편의 산 중턱으로 하이킹을 해야하는 코스였다. 다행히 비가 그쳐서 신록이
더 푸르르게 보이는 길을 가족과 함께 걸었다. 마을 중간 중간마다 있는 작은 분수대에서 민호랑 장난도 치고
잔디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의 방울소리도 들으며 천천히 올라 갔다. 1시간 이상 걸은 끝에 하이디의
집에 도착했다.나무로 만든 아주 오래된 집으로 산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이디의 집 아래에 있는 구릉지는
온통 잔디로 뒤덮여 있었고, 옆에 있는 공터에서는 닭과 염소들이 자유롭게 방목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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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하이디에 대해 아직 모르기 때문에 집이나 이야기에 나오는 피터, 할아버지 보다는 닭과 염소를 쫓아
다니며 장난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가 보는 것이 좋을 듯해서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는데, 다시 비는 오고 길도 잘못 들어서서 둘 다 너무 힘들어 했다. 굽 높은 샌들을 신고
있는 본희는 이미 다리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했고 민호도 지치는 것 같았다. 더욱이 기차 시간이
거의 다되어서 도저히 이대로는 제시간에 갈 수가 없어 보였다. 다시 처음에 올라온 길로 돌아가서 내려오는데
승용차가 오는게 보였다. 무턱대고 손을 들어 세웠다. 어마어마하게 뚱뚱한 아주머니 한 분과 잘 생긴 아들이
타고 있었다. 차는 포니 보다 더 낡은 아주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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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을 이야기하고 역까지 태워달라고 요청을 했다. 너무나 흔쾌히 받아 들이더니 뒷 좌석에 있는 짐들까지 치워주면서 역에
태워 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돈이라도 주고 싶었다. 여행의 참 맛은 이런 일들에서 찾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속으로 되뇌었다.얼마나 피곤했던지 본희와 민호는 열차를 타자마자 눈을 붙였다. 여전히 비는 차창을
적시고 있었고, 2시간의 긴 기차여행 끝에 생모리츠에 도착했다.
7시가 다 되어서 생모리츠에 도착했고 너무나 힘든 하루를 보내서 빨리 호텔부터 찾았다. 지도를 보니 1킬로미터 이상을
고지대로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일단 택시를 탔다. 한 10분 정도 만에 호텔에는 도착했는데 택시비가 20프랑이 넘게
나왔다. 무려 2만원 가까이 되는 돈이다. 물가에 다시 한번 놀라고 호텔에서 짐을 풀었다. 모두 힘이 빠져서 들어가자
마자 일단 침대에 누웠다. 특이하게 침대가 3개가 있는 호텔이었다.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고 본희나 민호나 그냥 잠이나
자자고 했다. 아직 시차도 제대로 적응이 안된 상태에서 강행군을 한 셈이니 힘이 안들리가 없다. 사실 나는 배가 조금
고팠지만 그냥 씻고 8시쯤에 다들 잠에 들었다. 정말 고된 하루였다. 내일부터는 천천히 움직이리라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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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8일 (목) 셋째날 (생모리츠→루가노(베르니나특급))
잠결에 몸이 무척 가벼운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창 밖은 여전히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더 자기엔 너무 상쾌한
기분이라 창문을 기분 좋게 창문을 열었다가 기겁을 하고 닫아 버렸다. 세상에 무슨 여름이 이렇게 추운지 집에서 느끼던
한 겨울 찬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조금씩 창문을 열면서 스위스 고산지대의
청정 공기를 들이 마시었다.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한겨울 새벽에 마셨던 무공해 공기 느낌이 떠올랐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30분이었다. 아직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어제 너무 일찍 잠에 들어선 탓이리라. 본희와 민호도
내 부스럭거림에 불편했던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지금 나가도 할 일이 없고 아침 식사는 7시부터라 셋이서 한 침대에
누워 어제 갔던 하이디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민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그렇게 힘이 들었는데도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족간에 이렇게 한 이불 속에서 오랫동안 이야기하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진정한 여행의 맛을 느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열차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호수가로 산책을 나갔다. 새벽의 찬 기운과는 달리 햇살이 들면서 시원한
기운만이 남아 더욱 상쾌한 아침을 만들어 냈다.호텔 창 밖으로 보았던 호수는 가까이 갈수록 더욱 오색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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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자연과 너무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진 휘트니스센터의 야외 놀이터를 마구 뛰어다니며 소리도 지르고
웃으며 너무 좋아했다. 많은 비용을 들인 여행이지만 전혀 후회가 되지 않았다. 호수는 주변의 산들을 너무 예쁘게
비추고 있고, 자세히 들여 다 보면 작은 물고기들이 수도 없이 떼지어 다니는 것이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한참 동안 태어나 가장 상쾌하고 유쾌한 아침을 보내고 생모리츠를 출발했다. 많은 여행 사이트에서 권유하는 스위스
여행의 진수인 베르니나 특급을 타는 날이다. 지금까지 탔던 일반 열차와는 달리 스위스 사람과 유럽 여행객들로
열차는 무척 붐볐다. 사는 곳이 자연 휴양림인 이들에게도 관광열차는 좋은 여행거리인가 보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조금만 늦게 탔으면 서서 가는 고생을 해야 할뻔했다. 민호도 1시간을 무릎에 앉혀서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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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니나 특급은 어제 지나온 초원과 호수의 평온한 광경과는 달리 구비구비
산길을 돌아 척박한 고봉과 만년설로 뒤덮인 코스를 천천히 지나갔다. 지나는 곳곳마다 하이킹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작은
간이역은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는 듯 나무나 돌로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다. 한참을 가더니 곧게 뻗은 나무가 즐비한 산 꼭대기에서
열차를 갈아타라고 하면서 무언가 상당히 어수선하게 역무원들이 돌아 다녔다. 역도 아닌 산 꼭대기에서 열차를 갈아타라고
하더니 다시 내려서 이번에는 철길 옆의 비포장에 서있는 승합차에 타라고 한다. 도대체 영문도 모른 채 짐을 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등줄기에서 땀이 다 흘러 내렸다. 승합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물어보니 철로가 불안해서 산 아래 마을의
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중간 거점인 이탈리아의 티라노로 간다고 한다.
산을 내려와 보니 정말 높은 곳에서 열차가 다니고 있었다. 산 아래는 한 여름의 기온을 그대로 간직한 날씨였다. 햇살은
다 태워버릴 듯 강하게 비추었고 열차 안은 파리가 날라 다녔다. 영화에서 보았던 이탈리아의 한 여름 농촌 풍경 그대로
였다. 새벽엔 겨울을, 아침엔 가을을, 지금은 한 여름을 만난 셈이니 하루에 4계절을 다 겪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티라노로 가는 중간은 포도밭과 농촌 마을, 널어 놓은 빨래가 잘 어우러져 어디를 찍어도 아름다워 보였다. 확실히 이탈리아는
스위스와 접해 있으면서도 전혀 달랐다. 기차를 탄 관광객들은 서로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서는 사진도 찍고 서로 보면서
손을 흔들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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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노에 도착해 약간은 짜증스러운 입국심사를 거쳐 역 밖으로 나왔다. 예전 유럽 여행 중 로마의 다빈치 공항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탈리아는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은 나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입국 심사도 사실 한 15분
정도 기다린 것 뿐인데 무언가 편안치가 않았다. 티라노에서는 1시간 정도 머물다 버스를 타야 하고 시간도 1시를 넘어서서
일단 역 근처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바로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웨이터가 오더니 일본말로 “곤니찌와”를
외치며 인사를 했다. 곧바로 한국말로 인사를 하고 한국인라고 말했다. 갑자기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물만 놓고 부랴부랴
동료한테 가서 뭐라고 말을 하고는 이번엔 동료까지 데리고 왔다. 내심 이거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와서는
서투른 영어로 이탈리아가 억울하게 심판의 편파 판정에 졌다며 계속 이것저것 말을 해댔다. 이런 월드컵에서 진 이야기를
하면서 내게 불쾌한 심정을 내세우고 있는 거였다. 갑자기 화가 확 나면서 받아 쳤다. 내가 이탈리아를 이긴 대한민국 대전에
사는데 경기는 정당했고 이탈리아는 자만했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나도 바쪼 같은 이탈리아 선수들을 좋아하고 AS로마나
유벤투스 같은 클럽 팀의 경기도 즐겨 본다고 말했다. 그리고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당신들은 종업원이고 난 고객이니 서비스에
충실하라고……
아무튼 이탈리아는 나하고는 인연이 맞지 않나 보다. 버스를 타고 오늘 목적지인 루가노로 향하는 길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민호는 미국인 가족 여행객으로 보이는 덩치가 무지 큰 형하고 내내 재미있게 장난치고 놀고 있는데, 본희는 천성이 버스를
오래 못타다 보니 너무 고통스러워 했고 3시간 반을 가면서 한번도 쉬지를 안았다. 대단한 승객들이었다. 한마디도 안하고
묵묵히 참고 가다니…. 아마 한국이었으면 난리가 났으리라. 버스 운전사는 계속 빵빵 거리며 좁은 길을 마구 운전해 댔고
날씨는 푹푹 찌는게 에어컨을 무색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정말 정말 어렵게 루가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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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노는 모든게 이탈리어로 써있는 스위스 속의 작은 이탈리아 였다. 5시가 넘은 늦은 오후에 도착했지만
일단 역 옆에 있는 예쁜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 관광을 나섰다. 스위스는 언덕 기슭에 집들이 있다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루가노 역도 언덕 위쪽에 있는데 참 힘들게 호수가 근처로 내려갔다.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서 활기차 보였고 관광객들도 무척 많았다. 생모리츠나 마이엔펠트의 평온함과는 전혀 다른
일반 휴양 관광지의 북적거림이 가득 찬 도시였다. .주변을 산책하다 공원에 우연히 들렸는데 민호는 공원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1시간 넘게 놀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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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민호 기억에 스위스 여행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과 어찌 그리 잘 노는지 아빠보다도
훨씬 훌륭한 글로벌 맨으로 보였다. 밤이 깊어지면서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치킨 너겟으로 식사를 때우고 호텔로 향했다. 민호는
잠이 들어 내 등에 업히고 본희도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많이 산책을 한 하루였다. 호텔 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루가노
호수는 가로등 불빛으로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을 하면서 늦은 밤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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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9일 (금) 넷째날 (루가노 → 멜리데 → 벨린조나 → 루가노)
느긋한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특별히 목적지를 옮기지 않으면서 루가노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는 날이다. 아름다운 고성이
포진해 있는 벨린조나, 유명한 영화제가 열리는 로카르노, 귀엽고 작은 스위스가 있는 멜리데의 스위스 미니어처 등등 작지만
둘러볼 곳이 무척 많은 지역이다. 정말 편안하고 느긋한 아침을 먹고 멜리데를 먼저 향하기로 했다. 스위스 오면서 민호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고 루가노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에 먼저 스위스 미니어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스위스패스를 쓰지
않는 날이라 역에서 표를 별도로 사고 기차에 올랐다. 루가노 호수를 낀 열차는 호수의 햇살을 받으며 멜리데에 도착했다.
겨우 8분. 정말 가까운 거리인데 표는 무려 10프랑이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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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자연경관 말고는 관광 안내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미니어처라 규모나 시설이 대단할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예상외로 너무너무 작은 규모였다. 미니어처라 규모도 미니인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도 실망은
이어졌다. 도대체 이게 뭐냐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선물가게와 식당, 놀이기구 몇 개 그리고 중앙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형들이 전부였다. 그냥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건성으로 보고있는데 조금씩 조금씩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서 보면 그냥 고성을 작게 만들은 것 뿐인데 자세히 살펴보니 건물에 설치된 창문의
창틀까지도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심지어는 구부러지고 부러진 철창까지도 정교하게 묘사가 되어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섬세하게 보려면 하루는 족히 걸릴 것 같았다. 내가 감탄을 하면서 미니어처를 보고 있는 사이
민호는 어느새 엄마랑 놀이기구를 즐기고 있었다. 몇 개 안 되는 놀이기구이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포크레인,
범퍼쉽 등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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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큰 튜브에 의자를 만들어서 타게 해 놓은 범퍼쉽은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물위를 자유자재로 돌아 다니며
서로 부딪히는 걸 보면 어른이 타도 재미있을 걸로 보였다. 두어 시간 즐기다 보니 점심시간도 다되었고 해서
아쉽지만 미니어처를 나왔다.
다음 행선지는 UN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고성들을 보러 벨린조나로 가기로 했다. 멜리데역에서 벨린조나
행을 보니 시간이 1시간은 족히 남아 있어서 표를 끊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기차역 맞은편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하고 야외 의자에 앉았다. 이탈리아 식당인 듯 종업원이 가지고 온 메뉴는 온통 피자와 스파게티,
파스타 뿐이었다. 피자는 티라노에서 질렸기 때문에 스파게티를 주문했는데, 결국은 또 실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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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도저히 알 수 없는 메뉴들이라 주인의 추천을 받아서 시켰는데 역시나 동서양의 입맛은 현저히 틀린 모양이다. 녹색의
면에 조금은 매콤한 고추기름 같은 소스가 들어간 스파게티인데 민호나 본희는 거의 먹지도 못하고 혼자서 억지로 전부 먹어
치웠다. 양은 또 왜 그리도 많이 주는지…. 식사를 마치고도 시간이 남아서 바로 옆에 있는 COOP에 가서 생필품을 샀다.
시골이라 그런지 물도 싸고 과자도 싸고 해서 조금 무식하지만 1.5리터 생수 2병에 먹고 싶었던 스위스 음료인 라벨라,
민호 주식인 과자까지 가방을 가득 채웠다. 어깨가 뻐근할 정도로 무게가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