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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60대 부부의 스위스 원정기
60대 부부의 스위스 원정기( 2017. 09. 30 – 10. 8)
남편이 32년전에 유럽 출장 중 융프라우에서 ‘참 아름답다. 꼭 한번 스위스를 같이 여행하고 싶다’고 엽서를 보낸 적이 있다.
그 후로 스위스는 내 마음 속에 숨겨둔 보물같은 여행지였다. 그러나 쉽게 기회가 오지 않고 세월이 흐르는데... 일년 전 추석 무렵으로 기억된다. 큰딸이 전화를 했다. “내년 추석에는 하루만 휴가내면 열흘 연휴란다. 우리 스위스로 여행가자” 발동을 걸었다. 자기는 바쁘기에 아델보덴이라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곳에 있는 호텔에 일박만 포함시켜주면 다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맡긴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 까지만 해도 급하지 않았다. 일년이나 남았는데. 인터넷으로 스위스 여행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샬레스위스’라는 여행사를 알아내고 상담을 하면서 항공원을 구하고 스위스 내에서의 교통과 숙박은 샬레스위스가 예약을 해주기로 했다. 대략의 일정을 협의하고 일 년 전에 항공권 예약이 열린다고 해서 출발 일 년 전이 되는 날 비행기 표를 사려고 인터넷을 열었다. 그런데 비행 일정을 알아보고 딸과 의논을 하고나면 이미 비행기 표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일 년 후의 추석연휴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두르기 시작하여 루프트한자를 타는 것으로 예약을 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좌석 공간이 넓은 자리까지 예약을 마쳤다.
그리고는 우리의 여느 여행과 마찬가지로 여행에 대한 연구에 돌입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참고하고 미리 사온 여행 안내서를 읽으면서 여행할 도시마다 구경할 목표를 세우고 동선을 짜고 이동 수단을 찾아보며 시간 계획을 세운다. 도시명, 역, 관광지 명칭, 먹어볼 음식, 음식점은 모두 현지 언어로 명칭을 기록한다. 그래야 현지인에게 물어볼 일이 생겨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준비한 메모라도 들이밀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에 TV를 2nd. 모니터로 연결하고 한 쪽에는 정보를 찾아보고 다른 쪽에는 구글 지도를 띄워놓고 관광지 동선을 연구했다. 샬레스위스에서도 미리 도시별 숙박할 호텔을 알려주었다.
드디어 출발 일주일 전. 샬레스위스 담당자와 만나 설명을 듣고 자료를 받았다. 놀란 것은 우리에게 제공된 자료에는 우리가 그간 고민하고 연구했던 도시 간 이동에 필요한 시간표, 도시별 숙박 호텔 위치, 관광안내까지 거의 완벽한 여행계획표가 책으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딱 하나 더 바란다면 그 자료를 전자책으로 만들어준다면 휴대폰에 저장해 다니면서 쉽게 열어볼 수 있을 텐데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만든 계획표는 PDF 파일로 만들어 스마트폰에 담아가고 샬레스위스에서 준 자료는 배낭에 넣고 다니기로 했다.
1일차(2017. 9. 30 맑음)
사상 최장 연휴에 인천공항 이용객이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갱신할 예정이라며 네 시간 전에 도착하라고 샬레 담당자가 신신당부 했으니 서둘렀다. 우리는 미리 체크인을 했고 보딩 패스까지 인쇄해온 덕에 별도의 줄에 서서 빠른 수속이 가능했다. 열한 시간의 비행 끝에 뮌헨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바젤로 가는 비행기를 환승했다.
저녁 8시에 도착한 바젤공항에서 다시 입국심사를 한다. 이미 EU 입국심사는 뮌헨에서 받았기에 그냥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간단하지만 또 심사가 있다. 그런데 심사관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뮤닉끄?”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무슨 뜻이지? 영어인가? 아니면 불어? 독어?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이 소용없다. “What?” “I beg your pardon?”해도 돌아오는 말은 똑같다. “뮤닉끄?” 그때서야 딸이 옆에서 거든다. 뮌헨을 뮈닉으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즉 뮌헨에서 오는 비행기 타고 왔냐고 가볍게 묻는 것이다. 애써 ‘Yes, 뮌헨’하고 답하고 빠져 나오니 비가 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위스를 경험할 차례다. 와이파이 공유기부터 켜고 정보 검색을 시작한다. 바젤 시내까지 들어갈 50번 공항버스를 타야한다. 우버 택시를 이용할 생각이었으나 예상비용이 50프랑으로 뜬다. 버스는 4.7프랑이니 셋이 14프랑 정도면 되는데 택시는 너무 비싸서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 가니 티켓 자동판매기가 있는데 이용하는 방법도 모르고 동전도 없다. 몇 번 시도하여 결국은 신용카드로 버스표를 3장 샀다. 버스에는 안내 전광판이 있고 정차할 역이 표시되니 독일어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 휴대폰에 뜨는 구글지도를 보고 있으면 목적지에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 종점인 바젤중앙역에 내리니 길 건너에 호텔이 보인다. 기차역 가까운 호텔로 잡아준 센스에 감탄!!
호텔에 짐을 풀고 가볍게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여행자들이 블로그에 소개한 전기 포트를 사 온 덕분이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시차 때문에 한 시간 간격으로 잠이 깬다.
2일차(2017.10.1.일 흐리면서 가끔 쨍쨍)
결국 5시에 기상하여 6시에 호텔 조식을 먹었다. 호텔 규모에 비하여 조식은 종류나 질이 훌륭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관광이다. 우선 스위스 카드에 날짜를 기입했다. 우리가 산 카드는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날짜를 건너가며 사용할 수 있는 표이기 때문에 교통수단이 필요한 날은 아침에 날짜를 기입해야 한다. 만일 날짜를 기입하지 않고 기차를 탔다가 표 검사에 걸리면 무임승차가 되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했던 바젤 관광은 포기하고 8시31분 베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좌석 등받이 아래에 캐리어를 넣을 수 있는 구조이다.
한 시간의 여행 끝에 베른역에 내렸다. 베른은 두세 시간 정도 시내 구경을 하고 다시 루체른으로 떠날 예정이기에 라커에 짐을 맡겨야 한다. 옆에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다들 타고 올라가니 우리도 타고 올라갔는데 뭔가 이상하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커피 파는 청년에게 물었더니 다시 지하로 내려가서 이리저리 가라고 알려준다. 그대로 따라가니 큰 역 시설이 나오고, 라커 표시가 보인다. 그런데 라커를 찾으니 이제는 동전 교환기가 없다. 누군가의 블러그에서 동전 교환기가 있다고 했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결국 생수를 사고 잔돈을 바꾸어서 9프랑(24인치2개), 7프랑(26인치1개)짜리에 넣고 베른 시내관광에 나섰다.
미리 공부한대로 구글 지도를 보면서 10번 버스 타는 곳을 찾았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가만히 살펴보니 역 앞에 버스 정류장이 여러 개가 있고 각 정류장마다 다른 버스 번호가 있다. 그러니 10번 버스가 서는 정류장을 찾아야하는 것이다. 다시 역으로 되돌아오고 길을 두 번이나 다시 건넌 뒤에야 10번 버스를 타고 장미공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한 방향으로 가는 모든 버스는 한 정류장에서 탄다는 고정관념이 문제였다.
장미공원은 언덕위에 있어서 베른 시내의 구시가와 아레강의 전망을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문제는 공기가 워낙 맑다보니 햇빛 아래서 사진을 찍는데 명암차가 너무 심해 그늘진 부분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오염된 공기에 찌든 우리에게는 행복한 고민이다.
곰 공원으로 내려오니 중국 단체 관광객이 무리지어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 틈에서 벗어나기 위해 빨리 걸어 니데그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로 나와 시내 경치를 구경했다. 아름다운 옛길을 보존하면서 그 위에 전차길을 깔아 옛것의 아름다움과 현대의 편리함을 공존시키는 그들이 부러웠다. 대성당에 이르러보니 성당 뒤편으로 아레강이 흐르고 강가 절벽을 막은 담장 안으로 큰 테라스 마당이 공원처럼 조성되어있다. 따뜻한 햇볕 아래 경치를 구경하며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기에 좋았다. 일요일이라 미사 중이기에 높이가 100m나 된다는 스위스 최고의 첨탑에는 11시30분부터 올라갈 수 있다고 하나 포기했다.
슈피탈 거리로 나와 곳곳의 분수와 시계탑, 감옥탑, 연방의사당을 둘러보았다. 베른에는 곳곳에 스위스강아지 조각이 있다. 예술가들이 각각 마음껏 칠하고 표현한 작품이다. 양치는개를 중시하는 스위스다운 발상이다.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내일 날이 흐리고 비올 확률이 높다하니 오늘 가급적 리기산에 올라가려는 생각이다. 12시 기차를 타기로 하고 남은 시간에 점심거리를 사기로 했다. 이동 중에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으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 기차 안에서 빵과 과일로 때우려는 생각이다. 쿱(Coop, 스위스에서 가장 흔한 슈퍼마켓 중 하나)에서 점심거리로 바나나, 커피, 요플레 등을 사고 빵은 제과점에서 샀다. 딸이 점심을 대강 때워도 쿱 빵보다는 전문 제과점의 빵을 먹겠단다. 라커의 짐을 찾아 12시 열차를 탔다. 가끔 열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이 변경되기 때문에 열차를 탈 때는 매번 SBB App이나 플랫폼 표시판에서 타려는 기차가 맞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스위스의 기차는 시계처럼 정확하다. 1시에 루체른에 도착하여 3분정도 걸어가니 예약한 호텔(Waldstaetterhof)이 보인다. 후다닥 체크인하고 짐만 던져 두고 리기산에 가기 위한 유람선을 타러 나섰다.
루체른에서 리기쿨룸에 올라가는 방법은 여러 경로가 있지만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비츠나우에 내려 등산철도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유람선에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밖으로 나가 풍경을 구경하면서 갔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불지만 옷을 따뜻하게 입어서 좋았다. 경치가 환상적이다. 멀리 설산들이 보이고 호수 주변을 따라 예쁜 마을과 산중턱에 보이는 초원, 모든 조합이 이루어진 풍광이다.
배를 내리니 바로 등산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연결되는 시스템이다. 등산철도는 왼쪽으로 타야 경치가 멋지다고 했는데 다행히 왼쪽에 앉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호수를 내려다보는 경치가 장관이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어지더니 정상에 다다르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 정상 부분이 구름 속에 묻혀있는 것이다. 이곳은 루체른 호수와 멀리 웅프라우를 비롯한 많은 알프스 산들을 조망 할 수 있는 곳이나 오늘은 시계가10m 정도다. 아쉽다. 여행은 인생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맞을지 모르는 것이라고 옆에서 위로하지만 시작이 어긋나는 듯해서 매우 우울하다.
내려갈 때는 리기쿨룸에서 등산철도를 타고 한 정거장만 내려와서 리기 칼트바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베기스에서 유람선을 갈아타고 루체른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잡았으나 내가 케이블카 도착시간과 배 시간이 너무 짧아 자신이 없다고 하자 시간이 안 맞으면 위험하다고 그냥 등산열차로 내려가는 것으로 아빠가 결정했다. 내가 오 분 안에 갈아타기 어렵다고 한 때문이나, 베기스에서 같이 등산철도를 탔던 일행들이 성공적으로 시간을 맞추어 배를 타는 것을 보니 또 섭섭했다.
저녁 식사 후 루체른 야경을 보러 나갔다. 구시가지에 있는 식당은 한국인가 싶게 한국인이 많았다.
밤에 보는 카펠교는 참 아름답다.
3일차(2017.10.2. 월 흐림)
어제까지 일기예보로는 비가 온다고 했으나 비는 오지 않고 흐리다. 그러나 공기가 맑아 흐려도 시계는 좋다. 멀리 리기산 중계탑이 보인다. 차라리 오늘 리기산을 갔으면 산 아래 경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호텔 체크아웃 후 짐은 호텔에 맡기고 루체른 시내관광에 나섰다. 미리 계획한대로 호프교회에 갔다. 마침 미사 끝 무렵이라 강복을 주는 시점이었다. 카톨릭 성당인데 프랑스나 독일의 성당과 겉모습이 많이 다르다. 내부는 웅장하고 아름답다. 성당 건물을 빙 둘러서 묘지들이 있고 묘지에는 꽃과 다양한 소품으로 장식들을 하고 있다.
구글 지도를 켜서 빈사의 사자상으로 걸어갔다. 외국여행에 구글 지도는 참으로 요긴하다.
그 다음 목적지인 무제크 성벽을 찾아서 또 걸었다. 성벽의 4개의 탑을 공개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시계탑(Zeitturm)이 가장 인상적이라는 성벽을 따라 걸으니 루체른 구시가지, 로이스강, 호수, 주변 알프스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성벽을 걷다가 길이 막혔다고 중국인 관광객도, 같이 걷던 한국인 젊은 여자도 되돌아간다. 그런데 그 곳 벽에는 성벽을 따라 더 가는 방법이 적혀있었다. 탑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예상대로 성벽 아래로 내려오고 예쁜 길을 따라 걸으니 로이스강가로 연결된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강변길은 하루살이가 엄청 많아서 눈을 뜨기도 숨쉬기도 어려웠다. 손사래를 치면서 바쁘게 걸어 슈프로이어교를 보고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찾아 루체른 기차역에 왔다.
12시 기차를 타야하는데 시간이 많이 남아 플랫폼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에 호텔방에서 만든 주먹밥과 보온병에 담은 미소된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딸이 주먹밥을 배낭에 넣고 다녔는데 참기름 냄새가 난다고 불평했다. 외국인은 참기름 냄새를 싫어한다고 하니 다음에는 참기름은 넣지 말아야겠다.
커피는 기차에서 사먹기로 하고 중국인 단체를 피하여 뒤쪽 칸에 탔다. 2시간을 가야 두 개의 호수 가운데 있는 지역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터라켄 동역에 간다. 나중에 보니 식당차는 있으나 우리가 탄 객실에서는 그곳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 커피 판매원도 없고 커피가 아쉽다. 바젤-베른 구간에서 커피판매원을 봤기에 당연히 어떤 기차에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커피머신이 있는 밀차를 밀고 다니려면 1층짜리 객차가 쭉 연결된 평평한 기차만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탄 기차는 1.5층으로 몇 개의 계단으로 연결된 아래, 위 칸이 나뉜 객실이고 어떤 노선에는 2층 기차도 있다.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하여 호텔 Carlton Europe을 찾아서 체크인 하려니 아직 방이 준비되지 않다고 짐을 두고 관광하고 오란다. 날씨는 흐리지만 우리는 계획대로 Harder Kulm으로 갔다. 일인당 왕복 30프랑이나 우리가 가진 스위스카드는 다른 교통수단은 50% 할인하는 혜택이 있어 15프랑에 표를 구입했다. 해발 1322m나 되는 전망대라지만 빨간 푸니쿨라(급경사에 톱니철로를 깔고 로프로 끌어 올리는 미니 열차)를 타고 10분 만에 올랐다. 맨 앞자리에 앉으니 아래로 보이는 급경사가 무섭게 느껴진다.
정상에서는 두 개의 호수와 인터라켄 시가지,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의 멋진 뷰를 볼 수 있다. 또한 두호수의 다리(Zwei Seen Steg)라 불리는 아찔한 전망대가 있다. 날은 역시 흐렸지만 공기가 맑아서 시계는 좋다.
호수와 시가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매우 멋진 풍경이다. 그러나 구름이 아이거와 융프라우를 살짝 가리고 모습을 보여줄 듯 말 듯 약 올린다. 뷰를 감상할 수 있는 파노라마 레스토랑에 앉아 커피를 시켜 놓고 한없이 풍광을 감상한다. 절벽 끝에 세워진 이 벽도 아마 옛날에는 성의 일부이었을 것 같은 모습이다. 이제부터는 느긋하게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여유를 즐겼다. 중국 단체관광객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사진을 찍더니 우르르 내려갔다.
이곳을 내려와서 호텔 방을 배정받았다. 테라스도 있고 보조 침대도 정식 침대이다. 냉장고와 에어컨은 없지만 방이 훌륭하다. 쿱에 가서 과일과 초콜렛, 와인, 물을 사고 대충 시스템을 익혔다. 특히 과일을 살 때는 상품 번호를 외워 과일 봉지를 저울에 올려놓고 상품 번호를 입력하면 가격표가 출력된다. 그 가격표를 봉지에 붙이면 계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과일은 사고 싶지만 사는 방법을 몰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놓는다.
오늘 저녁은 퐁듀를 먹기로 하고 살레스위스 책에 소개된 식당 ‘Restaurant Chalet’를 찾아 나섰다. 식당은 서역 근처인데 슬슬 걸어서 거리 구경을 하면서 찾아 나섰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 식당만 없다. 구글에서 지리를 익혔고 사진을 통해서도 익혀두었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주변 호텔에 들어가서 물으니 폐업하고 없단다. 그래도 오늘은 꼭 퐁듀를 먹겠다고 다시 찾다가 블로그에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Des Alpes로 갔다. 이곳은 한국어 메뉴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더니 역시 한국 사람이 많다. 이곳 종업원들이 불친절하다는데 그런 걸 못 참는 남편이 걱정이다.
서양인이 아닌 집시같이 생긴 아저씨가 서빙 하는데 살짝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치즈 퐁듀 2인분과 소시지를 곁들인 뢰스티(감자부침이)에 화이트와인 1병을 시켰더니 종업원이 반색을 하면서 친절해진다. 우리는 치즈에 익숙하고 좋아하니까 이 식당의 큼큼한 냄새도 불편하지 않다. 퐁듀는 아주 맛있었지만 뢰스티는 소스가 우리 입맛에는 짠 편이다. 맥주를 부르는 맛이다. 108프랑 정도 나왔는데, 120프랑을 놓고 나왔다. 스위스는 팁을 주지 않는다고 하나 인터라켄은 팁을 바란단다.
팁 문화가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팁은 불편하다 못해 불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프랑스 니스 여행 때도 팁이 음식 값에 포함되어 있어서, 기분 좋고 편했다. 미국여행 시 매번 팁 계산하면서 바가지 쓴 기분이었다.
4일차(2017.10.3. 화 비 후 갬)
오늘은 대망의 융프라우를 올라가는 날인데 새벽부터 계속 비가 온다. 일기예보에는 오후 3시에 갠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지 궁금하다.
우리는 시차가 안 맞아서 5시면 일어나서 샤워하고 아침밥을 기다린다. 조식을 먹으러 가서 보니 단체 손님이 많은지 어수선했다. 조금 서둘러 챙긴다고 훑어보니 계란이 있다. 당연히 삶은 달걀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를 집어 들었다. 다음에는 뭘 먹어야하나 생각하며 걸음을 떼는데 ‘마담’하며 뒤에서 다급하게 부른다. 뒤돌아보니 종업원이 어색한 얼굴로 나와 내가 쥐고 있는 달걀을 보며 뭐라고 설명한다. 아차 싶어서 보니 이건 날달걀이다. 옆에 달걀 삶는 통이 보인다. 얼굴이 뜨겁다. 어제까지 잔 호텔에서 먹은 달걀이 모두 삶아져 있었기에....
Coop에까지 다녀왔는데도 9시 밖에 안 되었지만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인터라켄 동역에 가서 융프라우 교환 바우처를 실물 티켓과 교환했다. 오후에 날씨가 맑아진다니까 먼저 라우터브룬넨을 보고 천천히 올라가자고 했다. 라우터브루넨에 도착하니 비가 더 많이 온다. 우산을 써도 몸이 다 젖어온다. 슈타우프바흐 폭포를 보고 돌아섰다. 이 폭포 옆 절벽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 폭포 뒤편의 발코니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감상하려고 했으나 비바람에 젖은 몸이 추워서 포기하고 돌아섰다, 이 마을은 유럽에서 가장 웅장한 빙하 계곡으로 72개의 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유명하단다. 하지만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조그만 카페에서 핫쵸코와 커피를 시켜먹으면서 몸을 좀 말렸다. 포근하고 아담한 곳이었다.
다시 역으로 가서 클라이네샤이덱(해발2061m)까지 노란색 산악열차를 타고 중간에 빨간색 산악열차로 환승하여 융프라우로 올라간다. 창밖이 흐려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이거글래처역을 지나면서 기차는 아이거와 묀히의 바위를 뚫어 만든 터널로 들어간다. 아이거반트역에 잠깐 내려 전망용 창을 통해 드라마틱한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했으나 안개뿐이다. 드디어 융플라우에 도착했다. 유럽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기차역이라고 Top of Europe이라고 써 놓았다. 스핑크스전망대는 해발 3571m다.
그러나 밖에 나가면 아무것도 안보이고 무지 춥다. 시계는 50cm 밖에 안되는 듯 눈보라가 치는데 얼음알갱이가 마구 얼굴을 때리니 춥고 따가워 눈을 뜰 수 없다. 얼른 다시 들어왔다. 아래층 카페테리아에서는 신라면 컵라면을 파는데 자리가 없어 서서 먹고 아수라장이다. 우리는 위층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날이 개기를 하염없이 기다려본다. 옆에 있던 인도인 부부의 어린아이는 음식을 먹다가 토하며 고통스러워하고, 부모들은 걱정스러워한다. 우리도 약간의 고산병 증세가 느껴진다. 눈보라가 창을 때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창밖이 보이는 자리로 옮겨 앉아 시간을 죽인다. 날이 개기를 기다려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개기는커녕 눈보라의 강도가 더 심해진다. 결국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얼음궁전을 구경하고 하산을 결정했다.
다시 철도를 타고 내려가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기차가 바위터널을 지나자마자 모두 환호성을 지른다. 아이거글래처역에 오니 갑자기 세상이 변한 것이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이 맑고 푸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모두들 환성을 지르며 뛰어내린다. 우리도 급히 짐을 챙겨 뛰어 내렸다. 어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환하게 맞이한다. 감격이다. 인생에 반전이 있듯 날씨에도 이런 반전이... 모두들 사진을 찍고 환호성을 지른다. 신에게 상을 받은 기분이다.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아이거글레처 역(2320m)에서 크라이네 샤이덱 역(2061m)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기차를 타고 내려가고 우리는 혼자 온 한국 아가씨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 이정표를 보고 그 방향대로 걸었는데 길이 이상하다. 사람들이 걸었던 흔적은 없어지고 언덕의 초지가 흡사 스키 슬로프 같은 곳이 나온다. 이건 아니다 생각이 들어 다시 되돌아 올라왔다. 내려갈 때는 몰랐는데 되돌아 올라오려니 급경사에 고산이다 보니 저질 체력이 바닥나 힘이 든다. 구글 지도로 다시 검색하여 새로운 길을 발견했지만 산 밑에서 구름이 올라오자 딸이 트레킹을 반대한다. 날씨의 변동이 심하니 위험하다는 것이다. 다른 팀들도 길을 헤매다 구름을 보고 포기했다. 아이거글레처 역까지 되돌아가자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와 사방이 다시 안개에 갇혔다.
기차를 타고 하산하는 도중에 구름, 비, 햇빛이 제멋대로 교차한다. 날씨 한번 버라이어티하다. 그란델발트를 거쳐 내려오는 열차길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이런 산골 마을에 숙박해보는 것도 스위스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호텔로 돌아와서 지친 몸을 달래줄 저녁을 먹었다. 건더기가 빈약한 비비고 김치찌개에 소시지를 더 넣고 끓여 먹다가 라면사리도 1개 넣으니 푸짐한 부대찌개가 된다. 이렇게 따뜻한 국물이 있는 한식을 하루 한 끼씩 먹으니 속도 편하고 한 끼 도전하는 현지식이 기대도 되고 즐거웠다.
5일차(2017.10.4. 수 맑음)
어제 호텔에 2프랑을 팁으로 놓고 나갔는데 안 가져가고 테이블에 다시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좀 의아하지만 오늘은 팁을 안 놓았다. 약간 찜찜하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서 9시 08분 발 골든 패스 특급을 탔다. 1등급으로 승급하고 좌석예약도 했건만 딸의 좌석은 따로 배치되어 있는 등 조금 기대이하이다.
역시 동양인이 많다. 몇 정거장 후에 우리 옆자리에 우리보다 두어 살 적어보이는 한국인 부부가 탔다. 그들은 인터라켄 서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매일 이곳저곳 자유롭게 돌아다닌단다. 오늘은 체르마트를 다녀올 거란다. 여행 고수의 냄새가 난다. 다음엔 우리도 다시 스위스 여행을 하면 숙소 이동을 줄이고 스위스패스를 최대한 활용해보자고 했다. 물론 장단점이 있지만,
Zweisimmen에서 기차를 환승했다. 이 기차는 이전 구간보다 상태가 좋다. 마침 기차에서 커피를 주문 받는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한대로 그 자리에서 내려주는 커피가 아니고, 주문 받아서 종이컵에 가져다주는데 맛은 기대만 못하지만 여유 있게 기차에 앉아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좋다.
여기서 몽트뢰까지 가는 구간이 골든패스 라인의 하이라이트란다. 창밖 경치가 멋지다. 파란 하늘, 숲, 초지, 드문드문 보이는 목조 가옥, 멀리 보이는 설산과 호수, 너무도 비현실적인 경치이다. 몽트뢰에 가까울수록 창밖 풍경은 스위스라기보다는 프랑스에 가깝다. 유명한 화이트 와인의 산지이기도 한 몽트뢰는 비탈진 능선에는 포도밭들이 줄지어 위치하고 있다.
드디어 몽트뢰에 12:13 도착했다. 짐 보관 라커를 찾았으나 조금 늦은 탓에 큰 사이즈가 없다. 두리번거리니 다른 쪽 플랫폼에 라커가 또 있다. 부지런히 달려가서 큰 것(9프랑) 2개에 짐을 넣었다. 그나마 위쪽 칸만 있었지만 키 큰 아빠 덕에 무난히 넣을 수 있었다.
역을 나와 길을 건너니 해변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타고 내려가니 바로 유람선 선착장이 보이고, 배가 들어오고 있다. 12:40 출발 배였다. 중간에 Territet(lac)에 들렀다가 시옹성에 도착하게 된다. 유람선은 스위스카드로 무료로 이용했다.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보는 몽트뢰 시내의 모습도 좋지만 시옹성을 호수에서 보는 광경, 멀리 우뚝 솟아있는 알프스의 설산도 좋다. 지도로 검색해보니. 아마도 몽블랑 인 듯... 레만 호수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로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에 있다. 가장자리에는 몽트뢰, 로잔, 브베 등의 스위스 도시들이 이어져 있다. 또한 프랑스의 에비앙 등도 이 호숫가에 있는 대표 도시 중 하나란다. 레만 호는 제네바 호라고도 불린다.
호숫가 암반 위에 세워진 시옹성은 마치 호수에 떠있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도착한 때는 점심시간이나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다. 가방을 뒤져서 과일과 쵸콜렛, 과자 등으로 간단히 간식을 먹었다. 우리가 가진 스위스카드는 박물관이 포함되지 않은 티겟이라 입장료 12.5프랑을 내고 시옹성에 입장했다. 입장 티켓을 사려고 줄을 섰는데 줄이 줄지 않는다. 한사람이 단체권을 사는데 일일이 한 장씩 티켓을 출력해 주므로 오래 걸린다고 한다. 우리 차례에서 아빠가 시니어 할인된다는 것을 안내판에서 읽었다. 적지만 2명 시니어 할인 받았다.
시옹성은 중세에 로마로 향하는 사람들로부터 통행료를 받던 곳이다. 성의 지하에는 당시 유럽에서 ‘최악’으로 꼽혔던 감옥이 있다. 단두대와 교수대도 구경할 수 있다. 또 감옥 기둥에는 바이런의 사인이 있는데 이 옥을 둘러본 그는 ‘시옹의 죄수’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좁은 통로들로 오밀조밀 연결되어 미로처럼 연결된 방들이 관람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
2층부터는 궁전과 숙소로 사용된 곳이다. 전망이 좋은 호수 쪽은 당시 성을 지배하던 사람들의 숙소와 손님을 접대하던 공간이었고 육지와 접한 쪽은 방어용 요새였다. 가장 높은 성탑에 올라가면 그림같이 펼쳐지는 레만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 12~13세기의 활과 창, 갑옷, 생필품을 볼 수 있다.
시옹성 기념품 샵에서 하얀 소 방울(Cow Bell) 모양의 자석과 시옹성이 그려진 자석을 샀다.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몽트뢰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유람선 선착장 근처에 있는 르 메트로폴(Le Metropole)이라는 식당의 테라스 자리에서 화이트와인 1병과 피자, 해산물 파스타, 샐러드 등을 주문했다. 음식이 맛있고 와인도 훌륭하다. 종업원도 친절하다. 사진도 부탁했다. 테라스 석에서 멋진 식사를 했다. 이곳은 프랑스에 가까운 탓인지 프랑스어를 쓰는 등 프랑스 분위기가 많이 난다.
식사 후에 해변을 산책하였다. TV 프로그램인 비긴어게인의 버스킹 장소이기도 했던 머큐리 동상과 광장을 보면서 사진도 찍으며 몽트뢰 여행을 즐겼다. 역으로 가서 짐을 찾고 체르마트로 가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여행사가 일정 잡아준 그 시간대의 기차를 타게 되었다. 살레스위스의 치밀한 계획에 감탄했다.
비스프(Visp)에서 체르마트로 올라가는 한 시간 남짓의 사철구간은 짧지만, 짐을 넣을 의자 밑 공간이 없어서 불편하다. 왼쪽에 앉으라는 불로거들의 충고로 왼쪽자리 착석, 1시간 내내 멀리 보이는 만년설 산봉우리들은 우리의 체르마트 여행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주었다.
중국계 젊은 엄마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딸과 여행을 한다. 아이에게 따로 자기 짐을 들게 하고 예의 있게 줄서서 기다리도록 가르친다. 보기 드문 동양인의 모습이다.
체르마트는 마터호른 산(4,478m) 기슭이자 마터피스프 계곡 꼭대기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고도 1,616m에 위치한 이 마을로 알프스 등반객들과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란다.
열차를 타야 이 마을에 이르고 자동차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며, 계곡을 따라 나 있는 도로는 장크트니클라우스에서 끊어진다. 청정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차량 진입을 철저히 금지시키고, 전통 목조 가옥 그대로를 보존해 나가고 있단다. 그래도 가끔 매연을 뿜는 화물차가 보이긴 한다.
숙소의 처음 계획은 역 근처 버터플라이 호텔이었으나, 그곳에 3인실을 못잡아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브리스톨호텔이 예약되었다. 브리스톨 호텔은 마테호른을 가장 멋지게 조망한다는 다리 옆에 바로 있다. 호텔 방의 일부는 마테호른 뷰를 자랑한다지만 우리는 3인실이라 이 뷰는 없단다. 마테호른뷰 방 2인실 2개를 예약하려니까 51만원이 추가란다. 체르마트 호텔비가 비싸다고 소문났지만 진짜 너무한다 싶어 포기하고 뷰는 나와서 다리에서 보기로 했다.
체르마트에 18:51에 도착하여 구굴지도로 숙소인 브리스톨(Bristol)호텔을 찾아서 갔다. 저녁 5시 이전이라면 호텔에서 픽업을 나올 수 있다지만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이미 7시여서 포기하고 걷기로 했다. 구글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한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개천가 길에서 둑 위로 두 계단 올라간 곳에 호텔이 있다. 구글지도는 입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그냥 짧은 거리로 인도하여 아랫길로 온 것이다. 아빠가 짐을 들고 2층 높이 정도 계단을 세 번이나 올라갔다. 불로거들의 구글지도에 대한 불평을 읽었으나, 무슨 말인지 이해못했다가 그제야 완전 실감. 그런데 또 이런 호텔 로비가 2층에 있어서.... 짐은 한사람이 입구에서 지키고, 먼저 체크인하기로 했다. 전자키를 받아서 아래층 문에 접촉하니 현관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로 4층으로 올라갔다.
저녁거리를 마련하려고 일단 짐 던져 놓고 나갔는데 다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석양에 물든 마테호른이 장관이다. 우리도 짐 끌고 호텔 찾아올 때의 과정을 다 보상받는다며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마테호른이 낯을 가려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데 첫 방에 이렇게 멋진 마테호른을 보다니 심쿵이다. 어둑해지자 쿱마트로 가서 물과 와인(스위스에서 우리의 음료)을 사고, 씻고 잘라 포장한 샐러드채소도 사고 쵸콜렛도 샀다. 밤에 마테호른을 보러 내려가는데 1층에 있는 전자렌지가 쇠사슬에 묶여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허 참, 가관인데 사진을 못 찍었네. 내일 아침에 풀렸는지 봐야겠다. 밤의 마테호른은 검은 커다란 삼각형만 있다. 날씨가 좋고 공기가 맑으니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가득하다.
6일차(2017.10.5. 목 맑음)
오늘은 마테호른을 가까이 보기위해 고르너그라트전망대 올라가는 날이다. 다행히 날이 맑다. 새벽부터 호텔앞 다리 위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침 해로 붉게 물드는 마테호른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이다. 아침 햇살에 비친 마테호른은 또 하나의 명품이다. 이것도 보다니.. 와! 감탄!!
여행사에서 안내해준 대로 오늘은 스위스카드에 날짜를 적지 않는다.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바우처를 실물 티켓으로 교환하는데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세심하게 배려해서 작은 것까지 안내해 놓은 정성에 감탄한다. 식사 후 체르마트 역 길 건너에 있는 고르너그라트 승강장으로 가서 등산철도 교환 바우처와 스위스카드를 보여주고 등산철도 티켓을 받았다. 24분 간격으로 출발한다는데 단체관광객이 많은 탓인지 만원이다.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을 피해 열차 앞칸에 탔으나 경관이 좋다는 오른쪽자리는 일본 단체관광객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해서 그냥 빈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일본인들은 조용하고 예의바르니 불편하지 않았다.
30여분 남짓 올라가니 고르너그라트 역이다. 전망대를 향해 오른 중간에 조그만 성당이 있다. 전망대에서 마테호른과 빙하를 조망하는데 그 광경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구름이 하나 없이 파란하늘과 삼각형의 산이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하늘이 너무 맑아 심심하다느니, 남들이 조작한 사진으로 볼 것 같다느니 복에 겨운 불평들을 한다. 쿨룸 호텔 테라스에서 커피 마시며 마냥 마테호른을 본다. 고도가 3,100m라지만 햇볕이 따뜻하여 한없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햇살이 강하니 70살이 되기 전에 나도 한번 써보겠다고 공항에서 산 미러 선글라스가 제값을 한다.
고르너그라트 역에 오니 스위스 전통복장을 한 연주단이 음악을 연주한다. 빨강과 파란옷의 색 조화도 그들의 음악과 노랫소리도 마테호른과 어울려서 흥겹고 멋지다. 스위스 관광청의 이벤트인지 나이가 지긋한 연주자들은 돈을 받지 않는다. 스위스 홍보용 같은 사진을 찍어 한국으로 날렸다. 감탄사가 카톡, 카톡하며 날아온다.
날씨가 멋지니 로텐보덴에서 리펠베르그까지 약 2.5~3km 정도 거리를 하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설산을 병풍삼아 갈색 언덕의 트래킹코스가 펼쳐진다. 멀지 않은 곳에 꽤 큰 리펠호수가 있는데 날씨가 좋아서 완벽한 마테호른의 반영을 보여준다. 또 사진 찍고 감탄하고.. 리펠베르그 쪽으로 이동하니 돌산 옆에 자그마한 호수가 하나 더 나오는데, 이곳의 반영이 더 멋지다. 나중에 보니 체르마트 홍보용 사진으로 이 호수의 사진이 쓰일 만큼 유명한 광경이다.
하이킹을 하는 내내 우리 가족뿐이다가 반쯤 지나서야 겨우 서양여자 한사람을 만났다. 또 휙 지나가는 산악자전거 서너 대 정도. 그저 길을 잃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도의 사람만 만날 수 있는 한적한 길이다. 우리가 스위스를 다 가진 듯 느껴진다. 리펠베르그 역은 아담하고 깨끗하다. 호텔도 있고 식당도 있으나 화장실 잠깐 들르고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점심은 체르마트 시내에서 먹기로 했다. 길가에 있는 식당은 테라스와 실내에 좌석이 있으나 우리는 햇볕이 따듯한 테라스에 자리 잡았다. 테라스에서 한가롭게 하는 식사는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내일은 날씨가 흐린다는 예보에 내일 일정에 있는 수네가 전망대를 오후에 보고 내일은 일찍 아델보덴으로 가자고 계획을 변경했다. 수네가(Sunnegga) 전망대행 케이블카 승강장을 찾아서 구글지도 보며 걸었다. 아빠가 인도하며 걷는데 길이 너무 먼 것 같아 이 길이 맞는지 자꾸 확인했다. 결국 아빠가 길 가던 젊은이들에게 길을 물어 확인해주었다. 푸니쿨라는 왕복 24프랑인데 스위스패스로 할인 받아 12프랑씩에 샀다. 로테호른 전망대까지 가고 싶었으나 10월부터는 점검으로 운행 중지란다, 터널을 한참 걸어가서 푸니쿨라를 탔다. 5분쯤 올라가 전망대에 도착하니 또 마테호른이다. 체르마트에 와서 마테호른을 못 보고 간 사람들도 많다는데, 우리는 계속 보이는 마테호른에 약간 질린 듯한 기분이 드니 이 또한 복에 겨운 푸념이다.
우리는 안내지도를 보고 대강 방향을 잡아 라이호수를 찾아서 올라갔으나 스키코스가 나온다. 고지에서의 오르막은 힘들고 숨차다. 묻지도 않고 직진만 하는 윤씨 패밀리라니. 또 한 무리의 한국 젊은 여자들이 올라온다. 그들은 수네가 5대 호수 트래킹을 하겠단다. 우리는 다시 내려오다 절벽 쪽으로 가서 내려다보니 우리가 찾던 호수가 저 아래로 보인다.
호수 주변에는 조그만 놀이터와 선 베드, 벤치를 마련해 가족들의 소풍 장소로 꾸며 놓았다. 호수에서 역시 마테호른의 반영이 보이지만 호수 가운데 분수가 있고 오후라서 약간의 물결이 일어 반영은 리펠호수만 못하다. 구경 후에 둘러보니 짧은 구간의 케이블카가 있다. 짧은 구간에 요금을 내야하나 의아했는데 무료이다. 케이블카를 타니 금방 전망대로 올라간다. 걸어 내려온 것이 손해 본 듯 억울하다. 이곳은 많은 액티비티를 한다. 산악 바이크, 킥 바이크, 패러글라이더 등.
저녁은 쇠사슬이 풀린 전자렌지에 제대로 밥을 데우고 버섯을 추가한 된장찌개를 먹었다. 스위스 산골 체르마트에서 이 정도면 호강이다. 우리는 유럽의 난방 상태가 나쁘고 가을이 춥다고 비상용으로 전기방석을 준비했는데, 체르마트에서 잘 썼다.
7일차(2017.10.6. 금 흐림)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체크아웃 했다. 아침식사 때 한국인 아가씨들끼리 하던 말을 듣고 우리도 역까지 가는 차편을 예약했다. 귀가 보배다. 호텔이 마련해 준 전기차를 타고 역으로 갔다. 오늘은 아델보덴으로 이동한다. 기차시간이 남아 쿱에서 선물로 쓸 쵸코렛 등을 구입했다. 출근시간을 피해 10:13 기차를 탔는데도 비교적 사람이 많다. 더욱이 비스프행 기차는 역시 짐이 의자 뒤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24인치 2개. 26인치 1개로 캐리어가 작은 편이라 아빠가 잘 정리해서 의자 밑으로 넣었다. 건너편에 젊은 한국여자 3명이 있는데 28인치 가방 3개와 보조 가방까지 짐이 어마하다. 내가 봐도 도저히 수납 방법이 없다. 이들 세 명이 4인석 두 칸을 차지하고 신발을 벗어 앞좌석에 다리를 죽 뻗고 앉아서 떠든다. 젊은 서양 아줌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여행하는지, 각자 배낭을 메고 탔다. 자리가 없어서 보조 자리에 앉고 승객들이 자리가 없어서 두리번거리건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례하고 불쾌한 모습에 내가 민망하다. 젊은 아가씨들이 수치심도 없는 것은 그런 예의를 배우지 못한 탓일 게다. 여행 중 이런 한국인을 만날까봐 가끔 두렵고 피하고 싶다.
마침 외국인 노부부가 타서 자리를 찾자 따로 앉았던 딸이 우리 편으로 건너오며 자리를 양보했다. 그들은 고맙다고 앉더니 책자를 꺼내어 기도를 한다. 궁금하다. 어떤 사람일까?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자기네는 인도에서 왔다고, 스위스를 여행하고 영국으로 간단다. 영국의 친구들이 고향의 향료를 가져다 달래서 짐을 싸다보니 너무 짐이 커졌단다. 할아버지는 심장이 안 좋아서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다며 할머니가 커다란 짐을 옮기면서 고군분투한다. 그 노부부는 한국 아가씨들에게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다. 한국에 무슨 일 있냐고 묻기에 2주간 연휴라고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비스프에서 스피츠(Spiez)행 기차를 갈아타고, 스피츠에서 프루티겐(Frutigen)행 완행열차를 탄다. 그래도 스위스는 기차와 버스 시간이 정확히 맞고 SBB앱과 구글 맵을 통해 정확히 파악된다. 프루투겐역에 내리니 바로 230번 버스가 있다. 타려하는데 기사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아델보덴이라고 하니 길을 건너가란다. 길을 건너 조금 가니 230번 버스가 또 있다. 버스에 아델보덴(Adelboden)이라고 표시가 있는데 급해서 못 본 것이다. 한국인 신혼부부와 우리 가족 또 외국인 관광객, 현지인들로 차는 만원이다.
시간이 이르지만(13:05) 아델보덴 Cambrian호텔에 체크 인하니 이미 방이 준비 되어 있단다. 방은 주니어 스위트룸이라는데 엄청 넓고 뷰도 멋지다. 왜 샬레스위스 트래블에서 아델보덴을 마지막 코스로 권했는지 알 것 같다. 처음부터 이런 방에 묶었으면 다른 스위스의 호텔에서 불평이 많았을 것이다.
아델보덴은 스위스 산속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인데 캠브리안호텔 온천스파 수영장 광고가 많은 사람을 설레게 한 곳이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해진 듯하다. 역시 스키장리조트가 유명한 곳으로 작은 호텔들이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휴양지이다. 기차가 지날 때 보던 조그만 산속 마을이다. 스위스의 속살을 보는 듯하다.
점심을 먹기 위에 호텔을 나와 마을을 구경하며 다니다가 라클렛을 대표메뉴로 표시한 조그만 호텔 아래층에 있는 식당(Hotel-Restaurant Bären)에 들어갔다. 마침 현지인들이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같이 놀던 주인 여자가 메뉴를 주면서 주문을 받는데 명쾌하고 씩씩하다. 여러 가지 추천도 해준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라클렛을 얘기했더니 해 준단다. 감자를 도우로 만든 피자와 샐러드, 맥주도 주문했다. 샐러드는 각종 신선한 채소가 아주 예쁘게 담겨져 있고 맛있다. 치즈를 녹여 삶은 감자에 얹어먹는 라클렛은 맛이 일품이고 양도 많다. 라클렛이 맛있다고 칭찬하며 치즈는 어떤 거냐고 물으니 건너편 치즈가게에서 파는데 이 동네에서 생산하는 치즈란다. 2시에서 1분쯤 지났을 즈음 젊은 동양 남녀가 들어 왔으나, 2시까지만 주문을 받는다고 돌려보낸다. 철저한 시간 개념이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계산을 하려니 주인여자는 계산서와 동전지갑을 가져와 정확히 잔돈을 거슬러준다. 스위스는 음식 값에 팁이 포함되어 주지 않는다고 했으나, 유명관광지는 은근히 팁을 바란다. 우리는 인터라켄과 몽트뢰에서는 팁을 준 듯하다.
곧 비가 올 것처럼 날씨가 꾸물거린다. 호텔로 돌아와 일단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결국 이 수영장 사진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여행 계획 단계에서부터 이곳은 엄청 불만의 대상이었다. 이곳을 오려니 동선이 복잡하게 꼬인다. 체르마트에서 다시 인터라켄 근처인 스피츠까지 와서 post버스(기차역과 마을을 연결하는 일종의 마을버스)를 타고 30분을 산속으로 들어온다. 또 이곳에서 공항에 갈 때도 버스를 타고 나가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다시 공항버스를 타야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더욱이 post버스는 한 시간 간격이니 한번 실수하면 출국에 지장이 생길까봐 계획단계에서도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딸의 요청으로 빙하특급을 포기하고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왔으니 내 오늘 수영장에서 뽕(?)을 빼리라 마음먹는다. 호텔방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호텔가운을 걸치고 수영장으로 갔다. 나는 수영 다니는 습관대로 샤워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수질관리를 위해 청결은 예의니까. 딸은 그냥 들어갔다. 그러나 오 나의 실수...... 이곳은 수영하는 곳이 아니고 경치구경하고 사진 찍는 곳이다. 나는 머리를 감아서 물에 빠진 생쥐 머리다. 딸이 시키지 않은 일 한다고 구박한다. 나 말고 누구도 머리에 물 적신 사람이 없다. 수영장은 엄청 작다. 조금 큰 목욕탕의 온수탕 정도 될까. 우리나라 온천의 야외 욕탕 정도의 크기이다. 경치는 끝내준다. 요즘 유행하는 인피니티 풀이다. 탁 트인 전망으로 멀리 설산과 목장 등 기차 밖 풍경으로 보았던 스위스가 그대로 있다.
수영장에는 한국인 신혼부부, 서양인 가족 4명, 서양인 커플 등이 조그만 풀에 복닥거린다. 광고처럼 수영장 가운데 벽에 뒤돌아 찍는 사진을 찍고 싶은데 좀처럼 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서양인 커플이 딱 붙어있다. 한참 후 그들이 비키자 얼른 우리가 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구름이 설산들을 살짝 덮고 있다. 물의 온도는 약간 따뜻한 정도로 우리나라 온천보다 낮은 편이다. 딸과 물 마사지 하면서 스파를 즐기고 아빠는 썰렁하게 느껴지는지 먼저 들어간단다.
조금 있으니 50대 어머니와 젊은 부부로 이루어진 한국인 가족이 왁자지껄하면서 들어온다. 어머니가 수경을 쓰더니 수영을 한다고 물장구를 친다. 발차기만 요란하지 몸은 안 나가는 수준이다. 조그만 풀에서 물장구를 치니 모든 사람에게 물이 튀긴다. 서양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머리는 감지 않고 들어와서 스프레이로 잔뜩 세운 머리를 물에 담그며 요란을 떤다. 결국 내가 수영하지 말라고 제지했다. 이곳은 수영하는 곳이 아니라 스파라고 설명했는데도 잘 못 알아듣는 듯했으나 아들이 머쓱해하면서 하지 말라고 말린다. 실내에 좀 더 큰 수영하는 풀이 따로 있다.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날씨가 차가워지며 살짝 비도 뿌린다. 이곳저곳 산책도 하고 상가도 기웃거려보다가 식당에서 소개해준 치즈가게에 갔다. 치즈 가게 지붕위에 젖소와 치즈 먹는 생쥐 조형물이 재미있다. 라클렛 치즈를 주문하니 한 덩어리가 500g이 넘는다. 1인분이 200g이라는데 우리 눈에는 너무 많다. 반 만 달라고 했더니 300g정도이다. 그러나 결국 후회했다. 귀국해서 친구부부와 라클렛을 해먹었는데 치즈가 아주 맛있었지만 양이 부족했다. 쿱에서 사온 라클렛 치즈를 추가 했지만 맛이 영 떨어진다. 주는 대로 사올걸 후회하지만 이미 늦은 일..
큰 거리 뒤쪽으로 가니 자그마한 카페나 호텔. 주택들이 나온다. 전원 마을이다. 쿱에 들러 저녁에 먹을 와인과 물을 사고 호텔로 들어와 남은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와인 잔을 기울이며 여행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날씨가 더욱 흐려지더니 눈발도 날리는데 그래도 야외 풀에서는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8일차(2017.10.7. 토 흐림)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어제보다는 맑아졌다. 역시 멋진 경치이다. 아침 일찍 떠나야하기에 서둘러 식당에 갔다. 조식은 스위스여행 중 가장 다양하고 고급스러웠다. 이곳은 신혼여행지여서 그런지 창가의 좋은 자리는 모두 2석이다. 가운데 테이블에 앉으니 창가 자리가 더욱 부럽다.
우리는 오늘이 여행 끝 날이다. 야무지게 짐 꾸리고, 체크아웃 했다. 체크아웃 하는 손님에게 일일이 물을 챙겨주는 섬세함에 또 한 번 반했다.
호텔 건너편에 있는 우체국(버스종점)에 가서 8시25분 버스를 타고 프루티겐에 내려 기차로 스피츠를 거쳐 바젤 행으로 환승했다. 바젤에 도착했으니 가장 복잡하고 여유 없는 이동을 완료했다는 생각에 이제야 안심이다. 첫날 묵은 빅토리아 호텔 옆에 있는 쿱에 들러 주로 치즈들을 쇼핑했다. 그런데 도대체 글씨는 있으나 뭔 소리지 알아먹을 방법이 없다. 그래도 읽을 수 있는 라클렛 치즈, 퐁듀 치즈와 뭔지 모를 덩어리 치즈 3개를 샀다. 길 건너서 공항버스(EuroCity 50번)를 탔다. 20분쯤 걸린다. 이번에는 스위스카드가 있어서 무료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모든 수속을 받고, 점심 먹으러 식당을 찾았다. 샐러드,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이곳은 종업원들은 프랑스어를 쓴다. 계산대의 이민자처럼 생긴 아줌마만 영어를 하고, 멀쩡하게 생긴 서양 젊은 종업원들은 영어가 안 통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청소부조차도 영어를 잘한다고 감탄했는데, 프랑스어권에 오니 영어보다는 바디 랭귀지가 필요하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한다. 프랑크푸르트는 뮌헨공항보다 크고 복잡하다. 2시간을 기다려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하니 피곤이 밀려온다. 매번 귀국길에 그런 것처럼 10시간 남짓 먹으면 자고, 일어나면 먹고 또 잠들고 그렇게 도착했다.
스위스 여행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위로 받은 느낌이다, 하느님이 내개 토닥토닥해주신 느낌이다.
지금까지 다녀온 여행지 중에 나중에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위스를 제일 먼저 꼽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 스위스 여행을 계획한다면 살레 스위스를 소개해 줄 것이다.
남편이 32년전에 유럽 출장 중 융프라우에서 ‘참 아름답다. 꼭 한번 스위스를 같이 여행하고 싶다’고 엽서를 보낸 적이 있다.
그 후로 스위스는 내 마음 속에 숨겨둔 보물같은 여행지였다. 그러나 쉽게 기회가 오지 않고 세월이 흐르는데... 일년 전 추석 무렵으로 기억된다. 큰딸이 전화를 했다. “내년 추석에는 하루만 휴가내면 열흘 연휴란다. 우리 스위스로 여행가자” 발동을 걸었다. 자기는 바쁘기에 아델보덴이라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곳에 있는 호텔에 일박만 포함시켜주면 다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맡긴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 까지만 해도 급하지 않았다. 일년이나 남았는데. 인터넷으로 스위스 여행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샬레스위스’라는 여행사를 알아내고 상담을 하면서 항공원을 구하고 스위스 내에서의 교통과 숙박은 샬레스위스가 예약을 해주기로 했다. 대략의 일정을 협의하고 일 년 전에 항공권 예약이 열린다고 해서 출발 일 년 전이 되는 날 비행기 표를 사려고 인터넷을 열었다. 그런데 비행 일정을 알아보고 딸과 의논을 하고나면 이미 비행기 표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일 년 후의 추석연휴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두르기 시작하여 루프트한자를 타는 것으로 예약을 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좌석 공간이 넓은 자리까지 예약을 마쳤다.
그리고는 우리의 여느 여행과 마찬가지로 여행에 대한 연구에 돌입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참고하고 미리 사온 여행 안내서를 읽으면서 여행할 도시마다 구경할 목표를 세우고 동선을 짜고 이동 수단을 찾아보며 시간 계획을 세운다. 도시명, 역, 관광지 명칭, 먹어볼 음식, 음식점은 모두 현지 언어로 명칭을 기록한다. 그래야 현지인에게 물어볼 일이 생겨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준비한 메모라도 들이밀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에 TV를 2nd. 모니터로 연결하고 한 쪽에는 정보를 찾아보고 다른 쪽에는 구글 지도를 띄워놓고 관광지 동선을 연구했다. 샬레스위스에서도 미리 도시별 숙박할 호텔을 알려주었다.
드디어 출발 일주일 전. 샬레스위스 담당자와 만나 설명을 듣고 자료를 받았다. 놀란 것은 우리에게 제공된 자료에는 우리가 그간 고민하고 연구했던 도시 간 이동에 필요한 시간표, 도시별 숙박 호텔 위치, 관광안내까지 거의 완벽한 여행계획표가 책으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딱 하나 더 바란다면 그 자료를 전자책으로 만들어준다면 휴대폰에 저장해 다니면서 쉽게 열어볼 수 있을 텐데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만든 계획표는 PDF 파일로 만들어 스마트폰에 담아가고 샬레스위스에서 준 자료는 배낭에 넣고 다니기로 했다.
1일차(2017. 9. 30 맑음)
사상 최장 연휴에 인천공항 이용객이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갱신할 예정이라며 네 시간 전에 도착하라고 샬레 담당자가 신신당부 했으니 서둘렀다. 우리는 미리 체크인을 했고 보딩 패스까지 인쇄해온 덕에 별도의 줄에 서서 빠른 수속이 가능했다. 열한 시간의 비행 끝에 뮌헨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바젤로 가는 비행기를 환승했다.
저녁 8시에 도착한 바젤공항에서 다시 입국심사를 한다. 이미 EU 입국심사는 뮌헨에서 받았기에 그냥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간단하지만 또 심사가 있다. 그런데 심사관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뮤닉끄?”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무슨 뜻이지? 영어인가? 아니면 불어? 독어?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이 소용없다. “What?” “I beg your pardon?”해도 돌아오는 말은 똑같다. “뮤닉끄?” 그때서야 딸이 옆에서 거든다. 뮌헨을 뮈닉으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즉 뮌헨에서 오는 비행기 타고 왔냐고 가볍게 묻는 것이다. 애써 ‘Yes, 뮌헨’하고 답하고 빠져 나오니 비가 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위스를 경험할 차례다. 와이파이 공유기부터 켜고 정보 검색을 시작한다. 바젤 시내까지 들어갈 50번 공항버스를 타야한다. 우버 택시를 이용할 생각이었으나 예상비용이 50프랑으로 뜬다. 버스는 4.7프랑이니 셋이 14프랑 정도면 되는데 택시는 너무 비싸서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 가니 티켓 자동판매기가 있는데 이용하는 방법도 모르고 동전도 없다. 몇 번 시도하여 결국은 신용카드로 버스표를 3장 샀다. 버스에는 안내 전광판이 있고 정차할 역이 표시되니 독일어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 휴대폰에 뜨는 구글지도를 보고 있으면 목적지에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 종점인 바젤중앙역에 내리니 길 건너에 호텔이 보인다. 기차역 가까운 호텔로 잡아준 센스에 감탄!!
호텔에 짐을 풀고 가볍게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여행자들이 블로그에 소개한 전기 포트를 사 온 덕분이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시차 때문에 한 시간 간격으로 잠이 깬다.
2일차(2017.10.1.일 흐리면서 가끔 쨍쨍)
결국 5시에 기상하여 6시에 호텔 조식을 먹었다. 호텔 규모에 비하여 조식은 종류나 질이 훌륭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관광이다. 우선 스위스 카드에 날짜를 기입했다. 우리가 산 카드는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날짜를 건너가며 사용할 수 있는 표이기 때문에 교통수단이 필요한 날은 아침에 날짜를 기입해야 한다. 만일 날짜를 기입하지 않고 기차를 탔다가 표 검사에 걸리면 무임승차가 되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했던 바젤 관광은 포기하고 8시31분 베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좌석 등받이 아래에 캐리어를 넣을 수 있는 구조이다.
한 시간의 여행 끝에 베른역에 내렸다. 베른은 두세 시간 정도 시내 구경을 하고 다시 루체른으로 떠날 예정이기에 라커에 짐을 맡겨야 한다. 옆에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다들 타고 올라가니 우리도 타고 올라갔는데 뭔가 이상하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커피 파는 청년에게 물었더니 다시 지하로 내려가서 이리저리 가라고 알려준다. 그대로 따라가니 큰 역 시설이 나오고, 라커 표시가 보인다. 그런데 라커를 찾으니 이제는 동전 교환기가 없다. 누군가의 블러그에서 동전 교환기가 있다고 했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결국 생수를 사고 잔돈을 바꾸어서 9프랑(24인치2개), 7프랑(26인치1개)짜리에 넣고 베른 시내관광에 나섰다.
미리 공부한대로 구글 지도를 보면서 10번 버스 타는 곳을 찾았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가만히 살펴보니 역 앞에 버스 정류장이 여러 개가 있고 각 정류장마다 다른 버스 번호가 있다. 그러니 10번 버스가 서는 정류장을 찾아야하는 것이다. 다시 역으로 되돌아오고 길을 두 번이나 다시 건넌 뒤에야 10번 버스를 타고 장미공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한 방향으로 가는 모든 버스는 한 정류장에서 탄다는 고정관념이 문제였다.
장미공원은 언덕위에 있어서 베른 시내의 구시가와 아레강의 전망을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문제는 공기가 워낙 맑다보니 햇빛 아래서 사진을 찍는데 명암차가 너무 심해 그늘진 부분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오염된 공기에 찌든 우리에게는 행복한 고민이다.
곰 공원으로 내려오니 중국 단체 관광객이 무리지어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 틈에서 벗어나기 위해 빨리 걸어 니데그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로 나와 시내 경치를 구경했다. 아름다운 옛길을 보존하면서 그 위에 전차길을 깔아 옛것의 아름다움과 현대의 편리함을 공존시키는 그들이 부러웠다. 대성당에 이르러보니 성당 뒤편으로 아레강이 흐르고 강가 절벽을 막은 담장 안으로 큰 테라스 마당이 공원처럼 조성되어있다. 따뜻한 햇볕 아래 경치를 구경하며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기에 좋았다. 일요일이라 미사 중이기에 높이가 100m나 된다는 스위스 최고의 첨탑에는 11시30분부터 올라갈 수 있다고 하나 포기했다.
슈피탈 거리로 나와 곳곳의 분수와 시계탑, 감옥탑, 연방의사당을 둘러보았다. 베른에는 곳곳에 스위스강아지 조각이 있다. 예술가들이 각각 마음껏 칠하고 표현한 작품이다. 양치는개를 중시하는 스위스다운 발상이다.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내일 날이 흐리고 비올 확률이 높다하니 오늘 가급적 리기산에 올라가려는 생각이다. 12시 기차를 타기로 하고 남은 시간에 점심거리를 사기로 했다. 이동 중에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으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 기차 안에서 빵과 과일로 때우려는 생각이다. 쿱(Coop, 스위스에서 가장 흔한 슈퍼마켓 중 하나)에서 점심거리로 바나나, 커피, 요플레 등을 사고 빵은 제과점에서 샀다. 딸이 점심을 대강 때워도 쿱 빵보다는 전문 제과점의 빵을 먹겠단다. 라커의 짐을 찾아 12시 열차를 탔다. 가끔 열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이 변경되기 때문에 열차를 탈 때는 매번 SBB App이나 플랫폼 표시판에서 타려는 기차가 맞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스위스의 기차는 시계처럼 정확하다. 1시에 루체른에 도착하여 3분정도 걸어가니 예약한 호텔(Waldstaetterhof)이 보인다. 후다닥 체크인하고 짐만 던져 두고 리기산에 가기 위한 유람선을 타러 나섰다.
루체른에서 리기쿨룸에 올라가는 방법은 여러 경로가 있지만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비츠나우에 내려 등산철도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유람선에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밖으로 나가 풍경을 구경하면서 갔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불지만 옷을 따뜻하게 입어서 좋았다. 경치가 환상적이다. 멀리 설산들이 보이고 호수 주변을 따라 예쁜 마을과 산중턱에 보이는 초원, 모든 조합이 이루어진 풍광이다.
배를 내리니 바로 등산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연결되는 시스템이다. 등산철도는 왼쪽으로 타야 경치가 멋지다고 했는데 다행히 왼쪽에 앉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호수를 내려다보는 경치가 장관이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어지더니 정상에 다다르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 정상 부분이 구름 속에 묻혀있는 것이다. 이곳은 루체른 호수와 멀리 웅프라우를 비롯한 많은 알프스 산들을 조망 할 수 있는 곳이나 오늘은 시계가10m 정도다. 아쉽다. 여행은 인생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맞을지 모르는 것이라고 옆에서 위로하지만 시작이 어긋나는 듯해서 매우 우울하다.
내려갈 때는 리기쿨룸에서 등산철도를 타고 한 정거장만 내려와서 리기 칼트바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베기스에서 유람선을 갈아타고 루체른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잡았으나 내가 케이블카 도착시간과 배 시간이 너무 짧아 자신이 없다고 하자 시간이 안 맞으면 위험하다고 그냥 등산열차로 내려가는 것으로 아빠가 결정했다. 내가 오 분 안에 갈아타기 어렵다고 한 때문이나, 베기스에서 같이 등산철도를 탔던 일행들이 성공적으로 시간을 맞추어 배를 타는 것을 보니 또 섭섭했다.
저녁 식사 후 루체른 야경을 보러 나갔다. 구시가지에 있는 식당은 한국인가 싶게 한국인이 많았다.
밤에 보는 카펠교는 참 아름답다.
3일차(2017.10.2. 월 흐림)
어제까지 일기예보로는 비가 온다고 했으나 비는 오지 않고 흐리다. 그러나 공기가 맑아 흐려도 시계는 좋다. 멀리 리기산 중계탑이 보인다. 차라리 오늘 리기산을 갔으면 산 아래 경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호텔 체크아웃 후 짐은 호텔에 맡기고 루체른 시내관광에 나섰다. 미리 계획한대로 호프교회에 갔다. 마침 미사 끝 무렵이라 강복을 주는 시점이었다. 카톨릭 성당인데 프랑스나 독일의 성당과 겉모습이 많이 다르다. 내부는 웅장하고 아름답다. 성당 건물을 빙 둘러서 묘지들이 있고 묘지에는 꽃과 다양한 소품으로 장식들을 하고 있다.
구글 지도를 켜서 빈사의 사자상으로 걸어갔다. 외국여행에 구글 지도는 참으로 요긴하다.
그 다음 목적지인 무제크 성벽을 찾아서 또 걸었다. 성벽의 4개의 탑을 공개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시계탑(Zeitturm)이 가장 인상적이라는 성벽을 따라 걸으니 루체른 구시가지, 로이스강, 호수, 주변 알프스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성벽을 걷다가 길이 막혔다고 중국인 관광객도, 같이 걷던 한국인 젊은 여자도 되돌아간다. 그런데 그 곳 벽에는 성벽을 따라 더 가는 방법이 적혀있었다. 탑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예상대로 성벽 아래로 내려오고 예쁜 길을 따라 걸으니 로이스강가로 연결된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강변길은 하루살이가 엄청 많아서 눈을 뜨기도 숨쉬기도 어려웠다. 손사래를 치면서 바쁘게 걸어 슈프로이어교를 보고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찾아 루체른 기차역에 왔다.
12시 기차를 타야하는데 시간이 많이 남아 플랫폼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에 호텔방에서 만든 주먹밥과 보온병에 담은 미소된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딸이 주먹밥을 배낭에 넣고 다녔는데 참기름 냄새가 난다고 불평했다. 외국인은 참기름 냄새를 싫어한다고 하니 다음에는 참기름은 넣지 말아야겠다.
커피는 기차에서 사먹기로 하고 중국인 단체를 피하여 뒤쪽 칸에 탔다. 2시간을 가야 두 개의 호수 가운데 있는 지역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터라켄 동역에 간다. 나중에 보니 식당차는 있으나 우리가 탄 객실에서는 그곳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 커피 판매원도 없고 커피가 아쉽다. 바젤-베른 구간에서 커피판매원을 봤기에 당연히 어떤 기차에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커피머신이 있는 밀차를 밀고 다니려면 1층짜리 객차가 쭉 연결된 평평한 기차만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탄 기차는 1.5층으로 몇 개의 계단으로 연결된 아래, 위 칸이 나뉜 객실이고 어떤 노선에는 2층 기차도 있다.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하여 호텔 Carlton Europe을 찾아서 체크인 하려니 아직 방이 준비되지 않다고 짐을 두고 관광하고 오란다. 날씨는 흐리지만 우리는 계획대로 Harder Kulm으로 갔다. 일인당 왕복 30프랑이나 우리가 가진 스위스카드는 다른 교통수단은 50% 할인하는 혜택이 있어 15프랑에 표를 구입했다. 해발 1322m나 되는 전망대라지만 빨간 푸니쿨라(급경사에 톱니철로를 깔고 로프로 끌어 올리는 미니 열차)를 타고 10분 만에 올랐다. 맨 앞자리에 앉으니 아래로 보이는 급경사가 무섭게 느껴진다.
정상에서는 두 개의 호수와 인터라켄 시가지,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의 멋진 뷰를 볼 수 있다. 또한 두호수의 다리(Zwei Seen Steg)라 불리는 아찔한 전망대가 있다. 날은 역시 흐렸지만 공기가 맑아서 시계는 좋다.
호수와 시가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매우 멋진 풍경이다. 그러나 구름이 아이거와 융프라우를 살짝 가리고 모습을 보여줄 듯 말 듯 약 올린다. 뷰를 감상할 수 있는 파노라마 레스토랑에 앉아 커피를 시켜 놓고 한없이 풍광을 감상한다. 절벽 끝에 세워진 이 벽도 아마 옛날에는 성의 일부이었을 것 같은 모습이다. 이제부터는 느긋하게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여유를 즐겼다. 중국 단체관광객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사진을 찍더니 우르르 내려갔다.
이곳을 내려와서 호텔 방을 배정받았다. 테라스도 있고 보조 침대도 정식 침대이다. 냉장고와 에어컨은 없지만 방이 훌륭하다. 쿱에 가서 과일과 초콜렛, 와인, 물을 사고 대충 시스템을 익혔다. 특히 과일을 살 때는 상품 번호를 외워 과일 봉지를 저울에 올려놓고 상품 번호를 입력하면 가격표가 출력된다. 그 가격표를 봉지에 붙이면 계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과일은 사고 싶지만 사는 방법을 몰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놓는다.
오늘 저녁은 퐁듀를 먹기로 하고 살레스위스 책에 소개된 식당 ‘Restaurant Chalet’를 찾아 나섰다. 식당은 서역 근처인데 슬슬 걸어서 거리 구경을 하면서 찾아 나섰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 식당만 없다. 구글에서 지리를 익혔고 사진을 통해서도 익혀두었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주변 호텔에 들어가서 물으니 폐업하고 없단다. 그래도 오늘은 꼭 퐁듀를 먹겠다고 다시 찾다가 블로그에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Des Alpes로 갔다. 이곳은 한국어 메뉴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더니 역시 한국 사람이 많다. 이곳 종업원들이 불친절하다는데 그런 걸 못 참는 남편이 걱정이다.
서양인이 아닌 집시같이 생긴 아저씨가 서빙 하는데 살짝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치즈 퐁듀 2인분과 소시지를 곁들인 뢰스티(감자부침이)에 화이트와인 1병을 시켰더니 종업원이 반색을 하면서 친절해진다. 우리는 치즈에 익숙하고 좋아하니까 이 식당의 큼큼한 냄새도 불편하지 않다. 퐁듀는 아주 맛있었지만 뢰스티는 소스가 우리 입맛에는 짠 편이다. 맥주를 부르는 맛이다. 108프랑 정도 나왔는데, 120프랑을 놓고 나왔다. 스위스는 팁을 주지 않는다고 하나 인터라켄은 팁을 바란단다.
팁 문화가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팁은 불편하다 못해 불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프랑스 니스 여행 때도 팁이 음식 값에 포함되어 있어서, 기분 좋고 편했다. 미국여행 시 매번 팁 계산하면서 바가지 쓴 기분이었다.
4일차(2017.10.3. 화 비 후 갬)
오늘은 대망의 융프라우를 올라가는 날인데 새벽부터 계속 비가 온다. 일기예보에는 오후 3시에 갠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지 궁금하다.
우리는 시차가 안 맞아서 5시면 일어나서 샤워하고 아침밥을 기다린다. 조식을 먹으러 가서 보니 단체 손님이 많은지 어수선했다. 조금 서둘러 챙긴다고 훑어보니 계란이 있다. 당연히 삶은 달걀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를 집어 들었다. 다음에는 뭘 먹어야하나 생각하며 걸음을 떼는데 ‘마담’하며 뒤에서 다급하게 부른다. 뒤돌아보니 종업원이 어색한 얼굴로 나와 내가 쥐고 있는 달걀을 보며 뭐라고 설명한다. 아차 싶어서 보니 이건 날달걀이다. 옆에 달걀 삶는 통이 보인다. 얼굴이 뜨겁다. 어제까지 잔 호텔에서 먹은 달걀이 모두 삶아져 있었기에....
Coop에까지 다녀왔는데도 9시 밖에 안 되었지만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인터라켄 동역에 가서 융프라우 교환 바우처를 실물 티켓과 교환했다. 오후에 날씨가 맑아진다니까 먼저 라우터브룬넨을 보고 천천히 올라가자고 했다. 라우터브루넨에 도착하니 비가 더 많이 온다. 우산을 써도 몸이 다 젖어온다. 슈타우프바흐 폭포를 보고 돌아섰다. 이 폭포 옆 절벽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 폭포 뒤편의 발코니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감상하려고 했으나 비바람에 젖은 몸이 추워서 포기하고 돌아섰다, 이 마을은 유럽에서 가장 웅장한 빙하 계곡으로 72개의 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유명하단다. 하지만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조그만 카페에서 핫쵸코와 커피를 시켜먹으면서 몸을 좀 말렸다. 포근하고 아담한 곳이었다.
다시 역으로 가서 클라이네샤이덱(해발2061m)까지 노란색 산악열차를 타고 중간에 빨간색 산악열차로 환승하여 융프라우로 올라간다. 창밖이 흐려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이거글래처역을 지나면서 기차는 아이거와 묀히의 바위를 뚫어 만든 터널로 들어간다. 아이거반트역에 잠깐 내려 전망용 창을 통해 드라마틱한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했으나 안개뿐이다. 드디어 융플라우에 도착했다. 유럽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기차역이라고 Top of Europe이라고 써 놓았다. 스핑크스전망대는 해발 3571m다.
그러나 밖에 나가면 아무것도 안보이고 무지 춥다. 시계는 50cm 밖에 안되는 듯 눈보라가 치는데 얼음알갱이가 마구 얼굴을 때리니 춥고 따가워 눈을 뜰 수 없다. 얼른 다시 들어왔다. 아래층 카페테리아에서는 신라면 컵라면을 파는데 자리가 없어 서서 먹고 아수라장이다. 우리는 위층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날이 개기를 하염없이 기다려본다. 옆에 있던 인도인 부부의 어린아이는 음식을 먹다가 토하며 고통스러워하고, 부모들은 걱정스러워한다. 우리도 약간의 고산병 증세가 느껴진다. 눈보라가 창을 때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창밖이 보이는 자리로 옮겨 앉아 시간을 죽인다. 날이 개기를 기다려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개기는커녕 눈보라의 강도가 더 심해진다. 결국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얼음궁전을 구경하고 하산을 결정했다.
다시 철도를 타고 내려가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기차가 바위터널을 지나자마자 모두 환호성을 지른다. 아이거글래처역에 오니 갑자기 세상이 변한 것이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이 맑고 푸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모두들 환성을 지르며 뛰어내린다. 우리도 급히 짐을 챙겨 뛰어 내렸다. 어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환하게 맞이한다. 감격이다. 인생에 반전이 있듯 날씨에도 이런 반전이... 모두들 사진을 찍고 환호성을 지른다. 신에게 상을 받은 기분이다.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아이거글레처 역(2320m)에서 크라이네 샤이덱 역(2061m)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기차를 타고 내려가고 우리는 혼자 온 한국 아가씨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 이정표를 보고 그 방향대로 걸었는데 길이 이상하다. 사람들이 걸었던 흔적은 없어지고 언덕의 초지가 흡사 스키 슬로프 같은 곳이 나온다. 이건 아니다 생각이 들어 다시 되돌아 올라왔다. 내려갈 때는 몰랐는데 되돌아 올라오려니 급경사에 고산이다 보니 저질 체력이 바닥나 힘이 든다. 구글 지도로 다시 검색하여 새로운 길을 발견했지만 산 밑에서 구름이 올라오자 딸이 트레킹을 반대한다. 날씨의 변동이 심하니 위험하다는 것이다. 다른 팀들도 길을 헤매다 구름을 보고 포기했다. 아이거글레처 역까지 되돌아가자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와 사방이 다시 안개에 갇혔다.
기차를 타고 하산하는 도중에 구름, 비, 햇빛이 제멋대로 교차한다. 날씨 한번 버라이어티하다. 그란델발트를 거쳐 내려오는 열차길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이런 산골 마을에 숙박해보는 것도 스위스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호텔로 돌아와서 지친 몸을 달래줄 저녁을 먹었다. 건더기가 빈약한 비비고 김치찌개에 소시지를 더 넣고 끓여 먹다가 라면사리도 1개 넣으니 푸짐한 부대찌개가 된다. 이렇게 따뜻한 국물이 있는 한식을 하루 한 끼씩 먹으니 속도 편하고 한 끼 도전하는 현지식이 기대도 되고 즐거웠다.
5일차(2017.10.4. 수 맑음)
어제 호텔에 2프랑을 팁으로 놓고 나갔는데 안 가져가고 테이블에 다시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좀 의아하지만 오늘은 팁을 안 놓았다. 약간 찜찜하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서 9시 08분 발 골든 패스 특급을 탔다. 1등급으로 승급하고 좌석예약도 했건만 딸의 좌석은 따로 배치되어 있는 등 조금 기대이하이다.
역시 동양인이 많다. 몇 정거장 후에 우리 옆자리에 우리보다 두어 살 적어보이는 한국인 부부가 탔다. 그들은 인터라켄 서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매일 이곳저곳 자유롭게 돌아다닌단다. 오늘은 체르마트를 다녀올 거란다. 여행 고수의 냄새가 난다. 다음엔 우리도 다시 스위스 여행을 하면 숙소 이동을 줄이고 스위스패스를 최대한 활용해보자고 했다. 물론 장단점이 있지만,
Zweisimmen에서 기차를 환승했다. 이 기차는 이전 구간보다 상태가 좋다. 마침 기차에서 커피를 주문 받는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한대로 그 자리에서 내려주는 커피가 아니고, 주문 받아서 종이컵에 가져다주는데 맛은 기대만 못하지만 여유 있게 기차에 앉아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좋다.
여기서 몽트뢰까지 가는 구간이 골든패스 라인의 하이라이트란다. 창밖 경치가 멋지다. 파란 하늘, 숲, 초지, 드문드문 보이는 목조 가옥, 멀리 보이는 설산과 호수, 너무도 비현실적인 경치이다. 몽트뢰에 가까울수록 창밖 풍경은 스위스라기보다는 프랑스에 가깝다. 유명한 화이트 와인의 산지이기도 한 몽트뢰는 비탈진 능선에는 포도밭들이 줄지어 위치하고 있다.
드디어 몽트뢰에 12:13 도착했다. 짐 보관 라커를 찾았으나 조금 늦은 탓에 큰 사이즈가 없다. 두리번거리니 다른 쪽 플랫폼에 라커가 또 있다. 부지런히 달려가서 큰 것(9프랑) 2개에 짐을 넣었다. 그나마 위쪽 칸만 있었지만 키 큰 아빠 덕에 무난히 넣을 수 있었다.
역을 나와 길을 건너니 해변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타고 내려가니 바로 유람선 선착장이 보이고, 배가 들어오고 있다. 12:40 출발 배였다. 중간에 Territet(lac)에 들렀다가 시옹성에 도착하게 된다. 유람선은 스위스카드로 무료로 이용했다.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보는 몽트뢰 시내의 모습도 좋지만 시옹성을 호수에서 보는 광경, 멀리 우뚝 솟아있는 알프스의 설산도 좋다. 지도로 검색해보니. 아마도 몽블랑 인 듯... 레만 호수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로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에 있다. 가장자리에는 몽트뢰, 로잔, 브베 등의 스위스 도시들이 이어져 있다. 또한 프랑스의 에비앙 등도 이 호숫가에 있는 대표 도시 중 하나란다. 레만 호는 제네바 호라고도 불린다.
호숫가 암반 위에 세워진 시옹성은 마치 호수에 떠있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도착한 때는 점심시간이나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다. 가방을 뒤져서 과일과 쵸콜렛, 과자 등으로 간단히 간식을 먹었다. 우리가 가진 스위스카드는 박물관이 포함되지 않은 티겟이라 입장료 12.5프랑을 내고 시옹성에 입장했다. 입장 티켓을 사려고 줄을 섰는데 줄이 줄지 않는다. 한사람이 단체권을 사는데 일일이 한 장씩 티켓을 출력해 주므로 오래 걸린다고 한다. 우리 차례에서 아빠가 시니어 할인된다는 것을 안내판에서 읽었다. 적지만 2명 시니어 할인 받았다.
시옹성은 중세에 로마로 향하는 사람들로부터 통행료를 받던 곳이다. 성의 지하에는 당시 유럽에서 ‘최악’으로 꼽혔던 감옥이 있다. 단두대와 교수대도 구경할 수 있다. 또 감옥 기둥에는 바이런의 사인이 있는데 이 옥을 둘러본 그는 ‘시옹의 죄수’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좁은 통로들로 오밀조밀 연결되어 미로처럼 연결된 방들이 관람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
2층부터는 궁전과 숙소로 사용된 곳이다. 전망이 좋은 호수 쪽은 당시 성을 지배하던 사람들의 숙소와 손님을 접대하던 공간이었고 육지와 접한 쪽은 방어용 요새였다. 가장 높은 성탑에 올라가면 그림같이 펼쳐지는 레만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 12~13세기의 활과 창, 갑옷, 생필품을 볼 수 있다.
시옹성 기념품 샵에서 하얀 소 방울(Cow Bell) 모양의 자석과 시옹성이 그려진 자석을 샀다.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몽트뢰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유람선 선착장 근처에 있는 르 메트로폴(Le Metropole)이라는 식당의 테라스 자리에서 화이트와인 1병과 피자, 해산물 파스타, 샐러드 등을 주문했다. 음식이 맛있고 와인도 훌륭하다. 종업원도 친절하다. 사진도 부탁했다. 테라스 석에서 멋진 식사를 했다. 이곳은 프랑스에 가까운 탓인지 프랑스어를 쓰는 등 프랑스 분위기가 많이 난다.
식사 후에 해변을 산책하였다. TV 프로그램인 비긴어게인의 버스킹 장소이기도 했던 머큐리 동상과 광장을 보면서 사진도 찍으며 몽트뢰 여행을 즐겼다. 역으로 가서 짐을 찾고 체르마트로 가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여행사가 일정 잡아준 그 시간대의 기차를 타게 되었다. 살레스위스의 치밀한 계획에 감탄했다.
비스프(Visp)에서 체르마트로 올라가는 한 시간 남짓의 사철구간은 짧지만, 짐을 넣을 의자 밑 공간이 없어서 불편하다. 왼쪽에 앉으라는 불로거들의 충고로 왼쪽자리 착석, 1시간 내내 멀리 보이는 만년설 산봉우리들은 우리의 체르마트 여행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주었다.
중국계 젊은 엄마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딸과 여행을 한다. 아이에게 따로 자기 짐을 들게 하고 예의 있게 줄서서 기다리도록 가르친다. 보기 드문 동양인의 모습이다.
체르마트는 마터호른 산(4,478m) 기슭이자 마터피스프 계곡 꼭대기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고도 1,616m에 위치한 이 마을로 알프스 등반객들과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란다.
열차를 타야 이 마을에 이르고 자동차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며, 계곡을 따라 나 있는 도로는 장크트니클라우스에서 끊어진다. 청정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차량 진입을 철저히 금지시키고, 전통 목조 가옥 그대로를 보존해 나가고 있단다. 그래도 가끔 매연을 뿜는 화물차가 보이긴 한다.
숙소의 처음 계획은 역 근처 버터플라이 호텔이었으나, 그곳에 3인실을 못잡아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브리스톨호텔이 예약되었다. 브리스톨 호텔은 마테호른을 가장 멋지게 조망한다는 다리 옆에 바로 있다. 호텔 방의 일부는 마테호른 뷰를 자랑한다지만 우리는 3인실이라 이 뷰는 없단다. 마테호른뷰 방 2인실 2개를 예약하려니까 51만원이 추가란다. 체르마트 호텔비가 비싸다고 소문났지만 진짜 너무한다 싶어 포기하고 뷰는 나와서 다리에서 보기로 했다.
체르마트에 18:51에 도착하여 구굴지도로 숙소인 브리스톨(Bristol)호텔을 찾아서 갔다. 저녁 5시 이전이라면 호텔에서 픽업을 나올 수 있다지만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이미 7시여서 포기하고 걷기로 했다. 구글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한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개천가 길에서 둑 위로 두 계단 올라간 곳에 호텔이 있다. 구글지도는 입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그냥 짧은 거리로 인도하여 아랫길로 온 것이다. 아빠가 짐을 들고 2층 높이 정도 계단을 세 번이나 올라갔다. 불로거들의 구글지도에 대한 불평을 읽었으나, 무슨 말인지 이해못했다가 그제야 완전 실감. 그런데 또 이런 호텔 로비가 2층에 있어서.... 짐은 한사람이 입구에서 지키고, 먼저 체크인하기로 했다. 전자키를 받아서 아래층 문에 접촉하니 현관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로 4층으로 올라갔다.
저녁거리를 마련하려고 일단 짐 던져 놓고 나갔는데 다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석양에 물든 마테호른이 장관이다. 우리도 짐 끌고 호텔 찾아올 때의 과정을 다 보상받는다며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마테호른이 낯을 가려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데 첫 방에 이렇게 멋진 마테호른을 보다니 심쿵이다. 어둑해지자 쿱마트로 가서 물과 와인(스위스에서 우리의 음료)을 사고, 씻고 잘라 포장한 샐러드채소도 사고 쵸콜렛도 샀다. 밤에 마테호른을 보러 내려가는데 1층에 있는 전자렌지가 쇠사슬에 묶여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허 참, 가관인데 사진을 못 찍었네. 내일 아침에 풀렸는지 봐야겠다. 밤의 마테호른은 검은 커다란 삼각형만 있다. 날씨가 좋고 공기가 맑으니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가득하다.
6일차(2017.10.5. 목 맑음)
오늘은 마테호른을 가까이 보기위해 고르너그라트전망대 올라가는 날이다. 다행히 날이 맑다. 새벽부터 호텔앞 다리 위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침 해로 붉게 물드는 마테호른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이다. 아침 햇살에 비친 마테호른은 또 하나의 명품이다. 이것도 보다니.. 와! 감탄!!
여행사에서 안내해준 대로 오늘은 스위스카드에 날짜를 적지 않는다.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바우처를 실물 티켓으로 교환하는데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세심하게 배려해서 작은 것까지 안내해 놓은 정성에 감탄한다. 식사 후 체르마트 역 길 건너에 있는 고르너그라트 승강장으로 가서 등산철도 교환 바우처와 스위스카드를 보여주고 등산철도 티켓을 받았다. 24분 간격으로 출발한다는데 단체관광객이 많은 탓인지 만원이다.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을 피해 열차 앞칸에 탔으나 경관이 좋다는 오른쪽자리는 일본 단체관광객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해서 그냥 빈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일본인들은 조용하고 예의바르니 불편하지 않았다.
30여분 남짓 올라가니 고르너그라트 역이다. 전망대를 향해 오른 중간에 조그만 성당이 있다. 전망대에서 마테호른과 빙하를 조망하는데 그 광경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구름이 하나 없이 파란하늘과 삼각형의 산이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하늘이 너무 맑아 심심하다느니, 남들이 조작한 사진으로 볼 것 같다느니 복에 겨운 불평들을 한다. 쿨룸 호텔 테라스에서 커피 마시며 마냥 마테호른을 본다. 고도가 3,100m라지만 햇볕이 따뜻하여 한없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햇살이 강하니 70살이 되기 전에 나도 한번 써보겠다고 공항에서 산 미러 선글라스가 제값을 한다.
고르너그라트 역에 오니 스위스 전통복장을 한 연주단이 음악을 연주한다. 빨강과 파란옷의 색 조화도 그들의 음악과 노랫소리도 마테호른과 어울려서 흥겹고 멋지다. 스위스 관광청의 이벤트인지 나이가 지긋한 연주자들은 돈을 받지 않는다. 스위스 홍보용 같은 사진을 찍어 한국으로 날렸다. 감탄사가 카톡, 카톡하며 날아온다.
날씨가 멋지니 로텐보덴에서 리펠베르그까지 약 2.5~3km 정도 거리를 하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설산을 병풍삼아 갈색 언덕의 트래킹코스가 펼쳐진다. 멀지 않은 곳에 꽤 큰 리펠호수가 있는데 날씨가 좋아서 완벽한 마테호른의 반영을 보여준다. 또 사진 찍고 감탄하고.. 리펠베르그 쪽으로 이동하니 돌산 옆에 자그마한 호수가 하나 더 나오는데, 이곳의 반영이 더 멋지다. 나중에 보니 체르마트 홍보용 사진으로 이 호수의 사진이 쓰일 만큼 유명한 광경이다.
하이킹을 하는 내내 우리 가족뿐이다가 반쯤 지나서야 겨우 서양여자 한사람을 만났다. 또 휙 지나가는 산악자전거 서너 대 정도. 그저 길을 잃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도의 사람만 만날 수 있는 한적한 길이다. 우리가 스위스를 다 가진 듯 느껴진다. 리펠베르그 역은 아담하고 깨끗하다. 호텔도 있고 식당도 있으나 화장실 잠깐 들르고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점심은 체르마트 시내에서 먹기로 했다. 길가에 있는 식당은 테라스와 실내에 좌석이 있으나 우리는 햇볕이 따듯한 테라스에 자리 잡았다. 테라스에서 한가롭게 하는 식사는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내일은 날씨가 흐린다는 예보에 내일 일정에 있는 수네가 전망대를 오후에 보고 내일은 일찍 아델보덴으로 가자고 계획을 변경했다. 수네가(Sunnegga) 전망대행 케이블카 승강장을 찾아서 구글지도 보며 걸었다. 아빠가 인도하며 걷는데 길이 너무 먼 것 같아 이 길이 맞는지 자꾸 확인했다. 결국 아빠가 길 가던 젊은이들에게 길을 물어 확인해주었다. 푸니쿨라는 왕복 24프랑인데 스위스패스로 할인 받아 12프랑씩에 샀다. 로테호른 전망대까지 가고 싶었으나 10월부터는 점검으로 운행 중지란다, 터널을 한참 걸어가서 푸니쿨라를 탔다. 5분쯤 올라가 전망대에 도착하니 또 마테호른이다. 체르마트에 와서 마테호른을 못 보고 간 사람들도 많다는데, 우리는 계속 보이는 마테호른에 약간 질린 듯한 기분이 드니 이 또한 복에 겨운 푸념이다.
우리는 안내지도를 보고 대강 방향을 잡아 라이호수를 찾아서 올라갔으나 스키코스가 나온다. 고지에서의 오르막은 힘들고 숨차다. 묻지도 않고 직진만 하는 윤씨 패밀리라니. 또 한 무리의 한국 젊은 여자들이 올라온다. 그들은 수네가 5대 호수 트래킹을 하겠단다. 우리는 다시 내려오다 절벽 쪽으로 가서 내려다보니 우리가 찾던 호수가 저 아래로 보인다.
호수 주변에는 조그만 놀이터와 선 베드, 벤치를 마련해 가족들의 소풍 장소로 꾸며 놓았다. 호수에서 역시 마테호른의 반영이 보이지만 호수 가운데 분수가 있고 오후라서 약간의 물결이 일어 반영은 리펠호수만 못하다. 구경 후에 둘러보니 짧은 구간의 케이블카가 있다. 짧은 구간에 요금을 내야하나 의아했는데 무료이다. 케이블카를 타니 금방 전망대로 올라간다. 걸어 내려온 것이 손해 본 듯 억울하다. 이곳은 많은 액티비티를 한다. 산악 바이크, 킥 바이크, 패러글라이더 등.
저녁은 쇠사슬이 풀린 전자렌지에 제대로 밥을 데우고 버섯을 추가한 된장찌개를 먹었다. 스위스 산골 체르마트에서 이 정도면 호강이다. 우리는 유럽의 난방 상태가 나쁘고 가을이 춥다고 비상용으로 전기방석을 준비했는데, 체르마트에서 잘 썼다.
7일차(2017.10.6. 금 흐림)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체크아웃 했다. 아침식사 때 한국인 아가씨들끼리 하던 말을 듣고 우리도 역까지 가는 차편을 예약했다. 귀가 보배다. 호텔이 마련해 준 전기차를 타고 역으로 갔다. 오늘은 아델보덴으로 이동한다. 기차시간이 남아 쿱에서 선물로 쓸 쵸코렛 등을 구입했다. 출근시간을 피해 10:13 기차를 탔는데도 비교적 사람이 많다. 더욱이 비스프행 기차는 역시 짐이 의자 뒤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24인치 2개. 26인치 1개로 캐리어가 작은 편이라 아빠가 잘 정리해서 의자 밑으로 넣었다. 건너편에 젊은 한국여자 3명이 있는데 28인치 가방 3개와 보조 가방까지 짐이 어마하다. 내가 봐도 도저히 수납 방법이 없다. 이들 세 명이 4인석 두 칸을 차지하고 신발을 벗어 앞좌석에 다리를 죽 뻗고 앉아서 떠든다. 젊은 서양 아줌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여행하는지, 각자 배낭을 메고 탔다. 자리가 없어서 보조 자리에 앉고 승객들이 자리가 없어서 두리번거리건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례하고 불쾌한 모습에 내가 민망하다. 젊은 아가씨들이 수치심도 없는 것은 그런 예의를 배우지 못한 탓일 게다. 여행 중 이런 한국인을 만날까봐 가끔 두렵고 피하고 싶다.
마침 외국인 노부부가 타서 자리를 찾자 따로 앉았던 딸이 우리 편으로 건너오며 자리를 양보했다. 그들은 고맙다고 앉더니 책자를 꺼내어 기도를 한다. 궁금하다. 어떤 사람일까?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자기네는 인도에서 왔다고, 스위스를 여행하고 영국으로 간단다. 영국의 친구들이 고향의 향료를 가져다 달래서 짐을 싸다보니 너무 짐이 커졌단다. 할아버지는 심장이 안 좋아서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다며 할머니가 커다란 짐을 옮기면서 고군분투한다. 그 노부부는 한국 아가씨들에게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다. 한국에 무슨 일 있냐고 묻기에 2주간 연휴라고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비스프에서 스피츠(Spiez)행 기차를 갈아타고, 스피츠에서 프루티겐(Frutigen)행 완행열차를 탄다. 그래도 스위스는 기차와 버스 시간이 정확히 맞고 SBB앱과 구글 맵을 통해 정확히 파악된다. 프루투겐역에 내리니 바로 230번 버스가 있다. 타려하는데 기사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아델보덴이라고 하니 길을 건너가란다. 길을 건너 조금 가니 230번 버스가 또 있다. 버스에 아델보덴(Adelboden)이라고 표시가 있는데 급해서 못 본 것이다. 한국인 신혼부부와 우리 가족 또 외국인 관광객, 현지인들로 차는 만원이다.
시간이 이르지만(13:05) 아델보덴 Cambrian호텔에 체크 인하니 이미 방이 준비 되어 있단다. 방은 주니어 스위트룸이라는데 엄청 넓고 뷰도 멋지다. 왜 샬레스위스 트래블에서 아델보덴을 마지막 코스로 권했는지 알 것 같다. 처음부터 이런 방에 묶었으면 다른 스위스의 호텔에서 불평이 많았을 것이다.
아델보덴은 스위스 산속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인데 캠브리안호텔 온천스파 수영장 광고가 많은 사람을 설레게 한 곳이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해진 듯하다. 역시 스키장리조트가 유명한 곳으로 작은 호텔들이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휴양지이다. 기차가 지날 때 보던 조그만 산속 마을이다. 스위스의 속살을 보는 듯하다.
점심을 먹기 위에 호텔을 나와 마을을 구경하며 다니다가 라클렛을 대표메뉴로 표시한 조그만 호텔 아래층에 있는 식당(Hotel-Restaurant Bären)에 들어갔다. 마침 현지인들이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같이 놀던 주인 여자가 메뉴를 주면서 주문을 받는데 명쾌하고 씩씩하다. 여러 가지 추천도 해준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라클렛을 얘기했더니 해 준단다. 감자를 도우로 만든 피자와 샐러드, 맥주도 주문했다. 샐러드는 각종 신선한 채소가 아주 예쁘게 담겨져 있고 맛있다. 치즈를 녹여 삶은 감자에 얹어먹는 라클렛은 맛이 일품이고 양도 많다. 라클렛이 맛있다고 칭찬하며 치즈는 어떤 거냐고 물으니 건너편 치즈가게에서 파는데 이 동네에서 생산하는 치즈란다. 2시에서 1분쯤 지났을 즈음 젊은 동양 남녀가 들어 왔으나, 2시까지만 주문을 받는다고 돌려보낸다. 철저한 시간 개념이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계산을 하려니 주인여자는 계산서와 동전지갑을 가져와 정확히 잔돈을 거슬러준다. 스위스는 음식 값에 팁이 포함되어 주지 않는다고 했으나, 유명관광지는 은근히 팁을 바란다. 우리는 인터라켄과 몽트뢰에서는 팁을 준 듯하다.
곧 비가 올 것처럼 날씨가 꾸물거린다. 호텔로 돌아와 일단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결국 이 수영장 사진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여행 계획 단계에서부터 이곳은 엄청 불만의 대상이었다. 이곳을 오려니 동선이 복잡하게 꼬인다. 체르마트에서 다시 인터라켄 근처인 스피츠까지 와서 post버스(기차역과 마을을 연결하는 일종의 마을버스)를 타고 30분을 산속으로 들어온다. 또 이곳에서 공항에 갈 때도 버스를 타고 나가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다시 공항버스를 타야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더욱이 post버스는 한 시간 간격이니 한번 실수하면 출국에 지장이 생길까봐 계획단계에서도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딸의 요청으로 빙하특급을 포기하고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왔으니 내 오늘 수영장에서 뽕(?)을 빼리라 마음먹는다. 호텔방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호텔가운을 걸치고 수영장으로 갔다. 나는 수영 다니는 습관대로 샤워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수질관리를 위해 청결은 예의니까. 딸은 그냥 들어갔다. 그러나 오 나의 실수...... 이곳은 수영하는 곳이 아니고 경치구경하고 사진 찍는 곳이다. 나는 머리를 감아서 물에 빠진 생쥐 머리다. 딸이 시키지 않은 일 한다고 구박한다. 나 말고 누구도 머리에 물 적신 사람이 없다. 수영장은 엄청 작다. 조금 큰 목욕탕의 온수탕 정도 될까. 우리나라 온천의 야외 욕탕 정도의 크기이다. 경치는 끝내준다. 요즘 유행하는 인피니티 풀이다. 탁 트인 전망으로 멀리 설산과 목장 등 기차 밖 풍경으로 보았던 스위스가 그대로 있다.
수영장에는 한국인 신혼부부, 서양인 가족 4명, 서양인 커플 등이 조그만 풀에 복닥거린다. 광고처럼 수영장 가운데 벽에 뒤돌아 찍는 사진을 찍고 싶은데 좀처럼 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서양인 커플이 딱 붙어있다. 한참 후 그들이 비키자 얼른 우리가 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구름이 설산들을 살짝 덮고 있다. 물의 온도는 약간 따뜻한 정도로 우리나라 온천보다 낮은 편이다. 딸과 물 마사지 하면서 스파를 즐기고 아빠는 썰렁하게 느껴지는지 먼저 들어간단다.
조금 있으니 50대 어머니와 젊은 부부로 이루어진 한국인 가족이 왁자지껄하면서 들어온다. 어머니가 수경을 쓰더니 수영을 한다고 물장구를 친다. 발차기만 요란하지 몸은 안 나가는 수준이다. 조그만 풀에서 물장구를 치니 모든 사람에게 물이 튀긴다. 서양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머리는 감지 않고 들어와서 스프레이로 잔뜩 세운 머리를 물에 담그며 요란을 떤다. 결국 내가 수영하지 말라고 제지했다. 이곳은 수영하는 곳이 아니라 스파라고 설명했는데도 잘 못 알아듣는 듯했으나 아들이 머쓱해하면서 하지 말라고 말린다. 실내에 좀 더 큰 수영하는 풀이 따로 있다.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날씨가 차가워지며 살짝 비도 뿌린다. 이곳저곳 산책도 하고 상가도 기웃거려보다가 식당에서 소개해준 치즈가게에 갔다. 치즈 가게 지붕위에 젖소와 치즈 먹는 생쥐 조형물이 재미있다. 라클렛 치즈를 주문하니 한 덩어리가 500g이 넘는다. 1인분이 200g이라는데 우리 눈에는 너무 많다. 반 만 달라고 했더니 300g정도이다. 그러나 결국 후회했다. 귀국해서 친구부부와 라클렛을 해먹었는데 치즈가 아주 맛있었지만 양이 부족했다. 쿱에서 사온 라클렛 치즈를 추가 했지만 맛이 영 떨어진다. 주는 대로 사올걸 후회하지만 이미 늦은 일..
큰 거리 뒤쪽으로 가니 자그마한 카페나 호텔. 주택들이 나온다. 전원 마을이다. 쿱에 들러 저녁에 먹을 와인과 물을 사고 호텔로 들어와 남은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와인 잔을 기울이며 여행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날씨가 더욱 흐려지더니 눈발도 날리는데 그래도 야외 풀에서는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8일차(2017.10.7. 토 흐림)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어제보다는 맑아졌다. 역시 멋진 경치이다. 아침 일찍 떠나야하기에 서둘러 식당에 갔다. 조식은 스위스여행 중 가장 다양하고 고급스러웠다. 이곳은 신혼여행지여서 그런지 창가의 좋은 자리는 모두 2석이다. 가운데 테이블에 앉으니 창가 자리가 더욱 부럽다.
우리는 오늘이 여행 끝 날이다. 야무지게 짐 꾸리고, 체크아웃 했다. 체크아웃 하는 손님에게 일일이 물을 챙겨주는 섬세함에 또 한 번 반했다.
호텔 건너편에 있는 우체국(버스종점)에 가서 8시25분 버스를 타고 프루티겐에 내려 기차로 스피츠를 거쳐 바젤 행으로 환승했다. 바젤에 도착했으니 가장 복잡하고 여유 없는 이동을 완료했다는 생각에 이제야 안심이다. 첫날 묵은 빅토리아 호텔 옆에 있는 쿱에 들러 주로 치즈들을 쇼핑했다. 그런데 도대체 글씨는 있으나 뭔 소리지 알아먹을 방법이 없다. 그래도 읽을 수 있는 라클렛 치즈, 퐁듀 치즈와 뭔지 모를 덩어리 치즈 3개를 샀다. 길 건너서 공항버스(EuroCity 50번)를 탔다. 20분쯤 걸린다. 이번에는 스위스카드가 있어서 무료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모든 수속을 받고, 점심 먹으러 식당을 찾았다. 샐러드,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이곳은 종업원들은 프랑스어를 쓴다. 계산대의 이민자처럼 생긴 아줌마만 영어를 하고, 멀쩡하게 생긴 서양 젊은 종업원들은 영어가 안 통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청소부조차도 영어를 잘한다고 감탄했는데, 프랑스어권에 오니 영어보다는 바디 랭귀지가 필요하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한다. 프랑크푸르트는 뮌헨공항보다 크고 복잡하다. 2시간을 기다려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하니 피곤이 밀려온다. 매번 귀국길에 그런 것처럼 10시간 남짓 먹으면 자고, 일어나면 먹고 또 잠들고 그렇게 도착했다.
스위스 여행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위로 받은 느낌이다, 하느님이 내개 토닥토닥해주신 느낌이다.
지금까지 다녀온 여행지 중에 나중에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위스를 제일 먼저 꼽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 스위스 여행을 계획한다면 살레 스위스를 소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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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 안녕하세요 고객님 ^^ 오래전부터 꼼꼼이 열심히 준비하셨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후기였습니다. 오리엔테이션때도 두분다 담당자의 말 하나하나 성의있게 들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도, 후기 남겨주신 지금도 감사드리고 두분의 열정에 다시한번 감동받았습니다. 보물같은 여행지 스위스에서의 추억들과 함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X | 2017.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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